기묘한 순간들에 대하여
기이하고 묘한 순간들.
세상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나조차 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기묘함을 느낀다.
정성껏 화장을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내가 뭘 샀나? 아닌데, 주문한 거 없는데. 누가 뭘 보냈나? 그럴리도 없는데 분명(ㅠ.ㅠ), 누구지?'
"밑에 화단 정리하는 사람인데, 너무 급해서 화장실 좀 쓸게요."
짧은 순간 오랜 고민을 하고 꺼림칙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 채 문을 열었다.
아주머니가 나가는 순간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좋은 일 했으니까, 좋은 일 있었으면 좋겠네.'
그로부터 한 나절 후, 거짓말처럼 좋은 전화를 받았다.
이 동네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천변에 왔던 날을 기억한다.
아주 추운 밤에 세상과 단절되려는 듯 이어폰 볼륨을 가득 높이고 천을 걸었다. 오래오래.
참기 힘든 칼바람이 마음의 파편들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느낌이 꽤 마음에 들었고,
이튿날, 다시 서류를 쓰러 천변 카페를 찾았다.
그렇게 천은 내 생활이 되었다.
어느 면접 전날은 대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짐짓 쿨한 척 하며 떨림을 가라앉혔고, 어떤 하루는 모든 것에 지쳐 여행책을 읽으면서 떠나는 상상을 했다.
낮의 천은 따뜻한 볕으로 품어주고 밤의 천은 찬 공기로 화가 가득한 머리를 식혀주었다.
그리고 오늘의 천은 기묘하다.
카페에서 여유롭고 허망하게 새로 산 공책을 구경하는 시간이 기묘하게 흘러간다.
더이상 다른 회사에 프러포즈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날 제멋대로 판단하는 면접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폭식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기묘하다.
새 공간, 새 사람들을 만날 걱정과 불안이라는, 어제와는 다른 차원의 생각을 하는 나 또한 기묘하다만,
그럼에도 이 천은 여전하고 많은 것이 변해도 또 여전할 것이라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카페에서 생강라떼를 홀짝이면서 '기묘함'에 흠뻑 빠져있는 이 순간,
옆 자리에서 강냉이를 맛있게 드시던 이모 삼촌 삼인방 중 아저씨가 말을 꺼낸다.
"불가사의 알죠? 내가 아는 어느 교수가 말하는데, 여자의 마음이 제일 불가사의하대요."
불가사의를 말하는 아저씨 옆에 기묘함에 대해 글을 쓰는 처자.
그리고 느리게 글 쓰는 처자가 한 글자를 쓰는 동안 그들은 자리를 떴고, 그 대화는 과거가 되었네.
세상 참 기묘해라.
매일매일 알 수가 없어서 기묘해라.
기묘한 세상의 가장 기묘하게 살아가는 인간이라 기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