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하늘
창문을 열어 하늘을 봤다. 오늘은 아주 맑은 날이었다.
나가지 않으면 손해보는 거라고 작열하는 태양을 뒤로 하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잠시 초침 소리를 듣고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그리고 별안간 자전거에 올라 늘상 가는 천변과 강변을 탔다.
밝은 표정들이 삼삼오오 휴일 오후의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행인은 그 사이에 잠깐 끼어 앉아 단편집을 읽었다.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젤리빈'은 녹아들지 못하는 사람을 두루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빈둥거렸다, 나는 빈둥거린다, 나는 빈둥거릴 것이다, 와 같이 일인칭 단수 형태로 빈둥거리기 위해 동사를 활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합을 통칭했다.
세시의 거리는 뜨거웠고 네시엔 더 뜨거워졌다. 4월의 먼지는 태양을 그물로 잡아두었다가, 영겁과도 같은 오후마다 되풀이하는 낡은 농담거리 삼아 다시 세상에 퍼트릴 태세였다. 하지만 네시 반이 되면 고요의 첫 번째 층이 드러워졌고, 차양과 잎사귀 무성한 나무들 아래로는 그림자가 길어졌다. 이런 연기 속에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인생은 모두 날씨였다.
세상 어떤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뜨거움을 거쳐, 지친 이마에 갖다 대는 여자의 손처럼 부드럽고 위안이 되는 서늘함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여기 조지아에는 어떤 낌이 있다. 뚜렷하게 형용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것이 남부 최고의 지혜라는 느낌이. 그래서 잠시 후 젤리빈은 잭슨 스트리트의 당구장에 나타났다. 오래된 농담을 지껄이는 마음 맞는 무리를, 아는 사람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그곳에.
선글라스 밑에 숨어 책을 읽었다.
머리 위에서 내리 꽂는 열기가 온몸 구석구석에 스몄다.
젤리빈은 젤리빈처럼 살아야 한다.
해가 긴 날에도 어김없이 달은 떴다.
초승달과 반달 사이 어딘가에 있는 달은 안정감 있게 고왔다.
멀리멀리 달에 눈을 맞추고 걸어 집에 돌아왔다.
'~하니까'로 끝나는 문장들을 되뇌었다.
나는 햇빛보다 달빛이 더 익숙하니까.
햇빛보다 달빛을 더 많이 보고 살아왔으니까.
달은 매일 뜨니까.
달빛은 햇빛보다 따사로울 때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