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그다드 카페>
영화는 팍팍한 사막에서 가장 고독해보이는 두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아니라 미국 네바다주의 바그다드 마을을 여행하던 독일인 부부가 있고
그 부근 유일한 숙소 겸 카페 겸 주유소를 운영하는 부부가 있다.
독일인 부부 중 남편은 말다툼 끝에 차를 타고 떠나버린다.
남겨진 여자는 트렁크를 질질 끌고 모랫빛 화면을 걷는다.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 중 여인은 같은 시각, 무능한 남편을 내쫓는다.
의외로 남편은 뒤도 안돌아보고 떠난다.
왜 항상 떠난 이보다 남겨진 이의 얼굴이 더 슬픈지.
눈물이 맺힌 여인의 얼굴은 사막만큼이나 건조하다.
이 영화는 남겨진 두 여자의 영화다.
남자없는 여인들은 서로를 경계한다. 특히 카페를 운영하는 브렌다가 더 그렇다. 신경이 날카로운 브렌다는 사사건건 독일에서 온 여행자 야스민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야스민의 방을 청소하다가 남자 옷이 많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를 하고, 금세 브렌다의 딸을 비롯한 숙소 식구들과도 친구가 된 야스민의 품에서 서둘러 갓난 아이를 거두어 가며 말한다.
당신은 당신 아이랑 놀아요.
의도가 분명한 날카로운 말들은 도리어 상대방이 '이거 참 아프다'고 말할 때 힘을 잃는다.
어쩌면 나처럼 아픈 사람 혹은 나보다 아픈 사람은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야스민은 말한다.
나는 아이가 없어요.
브렌다가 쌓아온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경계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두 여인은 가까워진다.
야스민은 마술 실력을 발휘해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를 명소로 탈바꿈시킨다.
매일 밤 마술쇼를 선보이는 그녀 덕에 바그다드 카페도, 브렌다의 얼굴에도 웃음이 핀다.
빨리 잠들면 좋겠는데, 아직 자고 싶지는 않은 아이러니한 공기가 가득한 밤에 이 영화를 틀었다.
아주 건조해보이는 영화를 틀어놓고 딴짓을 하다보면 금세 잠들지 않을까 했던 의도가 무색하게
점점 모니터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영화에 집중했다.
사실 나는 조금 삐딱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그 후의 이야기를 미리 걱정하는 편이다. 내 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은 친구도 시간이 흐르면 미워지는 순간이 있듯이, 내 이야기라 믿었던 영화의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 날이 오듯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모든 곳에 스며드는 진부함이라는 침입자다. 영화 말미에 눈물까지 흘려놓고선 영화가 끝나자 이제 바그다드 카페의 식구가 된 야스민이 이 건조한 마을을 지루하다 느끼고, 브렌다와 야스민 사이에 오가는 유대감이 빛을 잃는 날들이 올 거라는,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럼에도 진부함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진부함은 다시 새로워질 수 있는 증거고 신선함과 진부함은 행복한 슬픔처럼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짝과 같은 것이니 둘 모두에 감사하자고.
점점 진부해지고 있던 출근길 버스에 올랐다.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한 아침의 공기가 달리 느껴졌다.
모래바람 날리는 황량한 사막같은 바그다드에서 마법같이 꽃들이 피어나는 주유소 겸 숙소 겸 바그다드 카페.그 카페에 가고 싶다.
갈색 가루 맛이 나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황량한 사막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