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한 May 03. 2017

삶이 나를 찌를 때, 그리고 나도 삶을 찌르고 싶을 때

영화 <바그다드 카페>

삶이 나를 찌르면 나도 삶을 찌르고 싶어진다.
내 삶도, 왠지 행복해보이는 친구의 삶도, 괜히 멋져 보이는 이방인의 삶도.


영화는 팍팍한 사막에서 가장 고독해보이는 두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라크의 바그다드가 아니라 미국 네바다주의 바그다드 마을을 여행하던 독일인 부부가 있고

그 부근 유일한 숙소 겸 카페 겸 주유소를 운영하는 부부가 있다. 

독일인 부부 중 남편은 말다툼 끝에 차를 타고 떠나버린다.

남겨진 여자는 트렁크를 질질 끌고 모랫빛 화면을 걷는다.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 중 여인은 같은 시각, 무능한 남편을 내쫓는다. 

의외로 남편은 뒤도 안돌아보고 떠난다. 

왜 항상 떠난 이보다 남겨진 이의 얼굴이 더 슬픈지.

눈물이 맺힌 여인의 얼굴은 사막만큼이나 건조하다.


이 영화는 남겨진 두 여자의 영화다.


남자없는 여인들은 서로를 경계한다. 특히 카페를 운영하는 브렌다가 더 그렇다. 신경이 날카로운 브렌다는 사사건건 독일에서 온 여행자 야스민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야스민의 방을 청소하다가 남자 옷이 많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를 하고, 금세 브렌다의 딸을 비롯한 숙소 식구들과도 친구가 된 야스민의 품에서 서둘러 갓난 아이를 거두어 가며 말한다.

당신은 당신 아이랑 놀아요.


의도가 분명한 날카로운 말들은 도리어 상대방이 '이거 참 아프다'고 말할 때 힘을 잃는다.

어쩌면 나처럼 아픈 사람 혹은 나보다 아픈 사람은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야스민은 말한다.


나는 아이가 없어요.


브렌다가 쌓아온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생이 아프다 하면 생을 안아주고 싶어진다.


경계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두 여인은 가까워진다.

야스민은 마술 실력을 발휘해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를 명소로 탈바꿈시킨다.

매일 밤 마술쇼를 선보이는 그녀 덕에 바그다드 카페도, 브렌다의 얼굴에도 웃음이 핀다.



빨리 잠들면 좋겠는데, 아직 자고 싶지는 않은 아이러니한 공기가 가득한 밤에 이 영화를 틀었다.

아주 건조해보이는 영화를 틀어놓고 딴짓을 하다보면 금세 잠들지 않을까 했던 의도가 무색하게

점점 모니터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영화에 집중했다.



사실 나는 조금 삐딱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그 후의 이야기를 미리 걱정하는 편이다. 내 모든 것을 이해할 것 같은 친구도 시간이 흐르면 미워지는 순간이 있듯이, 내 이야기라 믿었던 영화의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 날이 오듯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모든 곳에 스며드는 진부함이라는 침입자다. 영화 말미에 눈물까지 흘려놓고선 영화가 끝나자 이제 바그다드 카페의 식구가 된 야스민이 이 건조한 마을을 지루하다 느끼고, 브렌다와 야스민 사이에 오가는 유대감이 빛을 잃는 날들이 올 거라는,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럼에도 진부함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진부함은 다시 새로워질 수 있는 증거고 신선함과 진부함은 행복한 슬픔처럼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짝과 같은 것이니 둘 모두에 감사하자고.

점점 진부해지고 있던 출근길 버스에 올랐다.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한 아침의 공기가 달리 느껴졌다.

  


모래바람 날리는 황량한 사막같은 바그다드에서 마법같이 꽃들이 피어나는 주유소 겸 숙소 겸 바그다드 카페.그 카페에 가고 싶다.

갈색 가루 맛이 나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황량한 사막을 느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우주를 침범당한다 해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