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다 지웠다
내 브런치 서랍에는 여러 편의 종이 뭉치가 구겨져있다.
아래로 쭉 스크롤을 내렸더니 번뜩이는 상념이 날라갈라 서둘러 손을 놀렸던 어느 날, 앞이 까마득해 답답함이 가시지 않던 어느 어느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끝 마침표 없는 종이 몇 장이 촤라락 발 밑에 떨어졌다.
가장 최근 날에는 무얼 쓰려 했나.
간만에 즐겁게 본 영화를 꼭 내 브런치에 눌러 새기겠다고 시작했던 리뷰는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덮었다.
개요를 끄적일 땐 꽤 괜찮은 글이 탄생할 줄 알았건만, 문장으로 낳아보니 별 거 없는 단순한 기록, 짧은 사유가 못내 부끄러웠다.
다시 펼쳐봐야할텐데. 종이 뭉치가 언제쯤 다시 펼쳐질까.
시간이 아주 많았던 날들이 있었다. 매일매일 일기를 써댔다. '썼다'보다 격정적으로 '써댔다'.
생각이 하나씩 들어차 밤이 되면 감정과 상념으로 가득 찬 머리와 가슴을 비우기 위해 손에 쥐가 나게 썼다.
글쓰기는 휴지통 비우기 버튼을 클릭하는 것처럼 단순하지가 못해 옛 기억을 들추다보면 다시 화가 뻗치고 막막함에 무력해지지만
무어라도 써야 하루를 끝낼 수 있다고 믿으면서 썼다.
요즘도 그렇게 일기를 쓴다.
펜이 움직이면 일기에 박제되는 기억처럼 모두 다 지나가라는 듯이.
쓰는 이 없는 책상에도 열 명이 다녀갔다.
쓰지 못하는 작가에게 10이라는 숫자는 고맙고 부끄러운 숫자다.
단 열 명.
평생 열 명을 위해 뭘 해 본 기억이 없건만,
열 명 앞에만 서도 실어증에 걸린 듯 말 없어지는 나지만,
이 열 명을 위해 내 목소리를 담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