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것들
너와 나 사이를 오갔던 발자국과 많은 글씨와 말들이 희미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나는 새 발자국을 찍지 못하고 지난 번에 그랬던 것처럼 뒤돌아서지도 못해.
엉거주춤.
서서 들여다보는 네모난 창 속의 너는 참 행복해보이지.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처럼 보이지.
이렇게 가만히 서있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서있는지 영문을 모르겠어서 주저앉아 버릴까봐
이상한 몸의 모양을 기억하려 해.
이상한 글씨로, 슬펐던 지난 날의 기억으로.
미칠 듯한 무료함이 그립다.
하품을 쩍 하고 왓차를 뒤적거리고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다보면 불현듯 떠오르는 삶의 의미라던가 나의 존재라던가 그런 심오한 고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립다.
어느 무료한 날, 가만히 대낮 놀이터에 앉아 있다보면 귀에 울리는 아이들 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들리지 않고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인 나 하나만 고독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동시에 햇볕을 맞고 있고 적어도 오늘 밥 걱정은 안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싶어 너털웃음이 나고, 그와 동시에 이 무슨 이중인격인가, 이중인격은 차치하고 오중인격쯤일 것이다하고 착잡함과 걱정과 뿌듯함과 즐거움 같은 공존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뭉게뭉게 솟아났다.
말 시키면 대답하고, 일 주면 일 하는 지금의 나는 자판기 같다. 한 순간에 딱 하나의 감정씩만 느끼는 것이 보너스란 없는 얄짤없는 자판기 같다. 때론 돈을 먹어버렸는지 아무리 지폐를 넣고 윤활제를 발라도 아무것도 뱉어내지 않는 것도 꼭.
아빠는 이렇게 보냈다.
"축 처져있지 말고."
잠깐 만난 아빠는 내가 처져 보였나보다.
낮에는 "밝고 걱정없고 건강해보이는" 인상을 지향한다만, 밤에는 나도 모르게 그런 표정이 나와버렸던 건지,
진심을 들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딱히 미안하지도 고맙지도 그립지도 않았던 아빤데 지나치고 나니 괜히 눈물이 났다.
딱딱한 휴지로 몰래 눈물을 훔쳐냈다.
아마 여름감기는 이 때 심해졌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