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기스 플랜>
90년대에 태어난 사람치고 '오정반합'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돌 중의 아이돌, 여전히 수많은 팬을 거느린 동방신기가 부르는 '오정반합'은 당시 소녀들 마음에 불을 질렀다. 그 때 내게 음악이란 가사보다 멜로디였고 흥미로운 오락거리 정도였기에 미처 오정반합의 의미를 알려고 들지조차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윤리 빠순이'라는 별명이 붙은 수험생이 되어서야, 그 오정반합이 독일의 대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을 설명하는 방법 '정반합'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이돌의 음악을 얕보지 않게 되었다.
정반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현재 상태는 '정'이고, 이 지루한 '정'에 변화를 꾀하는 '반'이라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그리고 '반'은 '정'과 갈등한다. 둘은 부딪히고, 각각이 초월해 '합'으로 수렴한다. 그러나 '합'의 상태도 영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합'도 언젠가는 '정'처럼 모순이 고인 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 때 다시 '반'이 나타나고, 그들의 결투로 '합'이 만들어질 것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정과 반 사이의 투쟁의 과정이다.
<매기스 플랜>에는 상당한 오지랖력을 지닌 매기가 등장해 두 가지 계획을 짠다. 한 번은 무언가를 얹고, 다른 한 번은 무언가를 덜어낸다. 이 두 가지 계획이 매기의 삶에 변화를 이끄는 '반'이 된다. 첫 번째 계획은 아이를 낳는 것이다. 매기는 싱글맘이 되기로 결심하고 수학을 잘했던 대학 동창에게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마 수학에 컴플렉스가 있는 모든 문과생들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인공수정을 시도한다. 그러던 중,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2년이 지난다. 아이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컸다. 소설을 쓰고 싶다며 작업 중인 소설을 보여주는 낭만파였던 남편은 대하소설을 쓰는지 좀처럼 탈고를 못하고 빈둥거리고 있고, 딸을 돌보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다 매기의 몫이다. 남편과 전처 사이의 아이들을 픽업하는 일 마저.
삶에 아이를 살짝 얹어 오순도순 행복한 싱글맘이 되려 했던 첫 번째 계획은 어디 갔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사랑의 마법은 깨졌고 몸을 움직여보니 매기의 발엔 여러 개의 모래 주머니가 달려있다. 살기 위해선 주머니들을 떼어내야 한다.
그래서 매기는 두 번째 플랜을 계획한다. 바로 남편을 원래 아내의 곁에 돌려 놓는 것. 어떤 여자가 날 두고 간 남자를 다시 받아줄까 싶지만, 때로 그런 운명도 있는 법. 영화에 등장하는 "한 명이 장미면 다른 한 명은 정원사"라는 비유처럼 보살핌을 받는 데 익숙한 조젯은 자신을 돌봐줄 그녀의 정원사가 돌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차저차 전 아내와 현 아내 두 여자가 합심해 남편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데 성공한다. 정원사인줄 알았더니 장미처럼 굴던 남편을 덜어낸 매기는 훨씬 홀가분해 보인다. 매기는 두 번의 계획을 통해서야 '싱글맘'이 되고자 했던 먼저번 계획을 달성한 셈이다.
모든 계획이 성공적인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다. 그보다 먼저, 모든 계획이 성공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계획을 짜는 사람은 인생의 변화와 개선을 갈망하는 사람이라는 것. 갈망하는 사람은 갈망하는 결과에 더 가까이 다가갈 확률이 높다. 물론 정반합의 철학처럼 모든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시시해지고 지루해지고 버거워지지만, 그 때는 또 애써서 새로운 '반'을 도모하면 되니까. 어느 순간 안에서 '반'이 넘쳐 흘러 '합'을 만들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때가 오고 마니까. 너무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