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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Aug 22. 2021

서브스택으로 바라본 '언론'의 본질

언론은 사실 보도와 오피니언으로 나뉜다.

[출처] Unsplash


"지금은 미디어 산업의 변곡점이며 인터넷의 제3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첫 번째 물결에서는 온라인에서 아무도 돈을 벌거나 쓰지 않았다. 두 번째 물결에서는 광고를 통해 수익이 발생했다. 세 번째 물결에서는 크리에이터와의 직접적 연결을 통해 수익이 발생하고 창작을 하게 될 것이다.”
- 마크 안드레센

  

실리콘밸리의 VC, 그리고 서브스택에 투자를 이끈 A16Z의 마크 안드레센은 오늘날을 세 번째 물결이 인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즉, 창착자와 독자(소비자) 간의 직접적인 생태계가 구축됐다는 것이다. 개인이 취향에 맞고 잘 만들어진 콘텐츠를 이용하는데 기꺼이 창작자에게 경제작 가치를 지불하는 D2C 경제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붐에는 ‘서브스택(Substack)’ 이라는 플랫폼이 자리 잡고 있다. 서브스택은 쉽게 말해 뉴스레터 창작 플랫폼으로, 작가나 기자들이 독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다. 뉴욕타임스의 유명 기자들이 서브스택으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이슈를 일으키기도 했던 바로 그곳이다. 서브스택의 유료 구독자 수는 50만 명 이상으로 몸집이 커졌고, 뿐만 아니라 상위 10개 채널은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21년 5월 기사 기준)     


대다수의 기사에선 서브스택에서 미디어의 미래를 보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기존 언론사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으며, 앞으로 언론사가 아닌 뉴스레터 플랫폼이 미디어를 대체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나는 서브스택의 등장 기점으로 언론사에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바로, ‘업의 본질’을 명확하게 재정의할 수 있는 타이밍이 왔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브스택이 정의한 ‘언론’과 언론사가 정의하는 ‘언론’은 다르다고 본다. 독자들이 앞 두 가지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Why, 즉 이유가 각각 상이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존 언론사들이 업에 대해 보다 공고히 포지셔닝한다면, 그들 역시 뉴스레터가 대체할 수 없는 명확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뉴미디어의 새로운 강자,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

[출처] medium.com

서브스택은 2017년 창립된 뉴스레터 창작 플랫폼이다. 작가들이 유료 이메일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이로 얻은 수익을 그들의 창작에 재사용할 수 있는 사이클을 구축한 비즈니스다. 서브스택은 뉴스레터 창작을 돕는 다양한 기술적 인프라를 제공하며, 창작자들이 얻은 구독 수익의 10%를 가져간다. 2020년 8월, 10만여 명이었던 유료 구독자는 2021년 5월 50만 명으로 성장했으며, 상위 10개 채널은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브스택은 어떻게
창작자들의 선택을 받았을까?

[출처] 서브스택

서브스택이 초반에 모멘텀을 얻을 수 있던 배경엔 양질의 공급자 라인업이 있었다. 이들을 성공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전략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보면,


1. 막대한 선불금

플랫폼, 구독 경제를 다루는 플랫폼이 성공하기 위해선 소비자에게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논리성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논리의 힘은 콘텐츠의 질에서 나온다. 이들은 콘텐츠의 높은 스탠다드를 확보하기 위해 강력한 언론사의 주요 기자들을 섭외했고, 결국 서브스택이 본격적으로 태동할 때 즈음, 뉴욕타임스와의 이슈도 붉어졌다. 서브스택이 엄청난 선불금을 지원해 주요 기자와 필진들을 자신의 플랫폼으로 섭외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실제로 뉴욕타임스의 문화 전문기자 테일러 로렌츠(Taylor Lorenz)가 30만 달러의 선불금을 제안받고 뉴욕타임스를 나와 뉴스레터를 시작했던 건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였다.     


2. 태동하는 개인 보상심리

과거엔 창작자 ‘개인’이 아닌 ‘집단’, 즉 언론사의 뒤에 서서 그들의 콘텐츠를 발행했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집단이 주목받는 경우가 빈번했다. 자신의 관점과 글 위에는 항상 ‘언론사’라는 강력한 배경이 군림하고 있었다. 하지만 뉴스레터가 등장하며 개인 창작자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직접적으로 뽐낼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셈이다. 언론사, 출판업자를 통하지 않고도 수입을 올리고, 세상과 관점을 나눌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3. 무료, 그리고 용이한 연동성

서브스택의 기본은 ‘무료’다. 메일 꾸미기, 링크나 영상을 삽입하거나 독자 데이터를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창작자가 나중에 유료 뉴스레터를 운영하게 되면, 그때 10%의 수수료를 받아가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는다. 월 $5를 기본으로 구독료를 다양하게 설정한다거나, 구독자를 대상으로 멤버십 서비스도 쉽게 기획할 수 있으며, 개인 홈페이지를 구축해 구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 역시 받아볼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브스택은 창작자가 다른 플랫폼에서 넘어올 때 편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연동 기능 또한 제공하고 있다. 기존 써놓은 글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할 수 있다거나, 과거 다른 플랫폼에서 발행했던 콘텐츠들을 아카이브 할 수 있는 기능, 뿐만 아니라 구독자 정보도 그대로 옮길 수 있다. 또한 서브스택에서 제공받는 통계 데이터를 통해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글을 열어봤는지, 몇 분 동안 글을 읽었는지와 같은 행동 데이터를 파악할 수 있다. 공급자 입장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경제적, 기술적 인프라를 공고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냥 넘어가면 섭섭한 서브스택의 경쟁사 라인업!

- 메일침프: 기능에 따라 상이한 구독료를 책정한다.

- 스티비: 아마 한국인에 가장 낯익은 뉴스레터 플랫폼이 아닐까 싶다. 발송 횟수에 따라 상이한 구독료를 책정한다.

- 트위터의 ‘레뷰’: 구독 수익의 5%를 수수료로 책정한다. 기존 호흡이 짧았던 텍스트와 이미지 중심의 플랫폼에서 호흡이 긴 콘텐츠에 주목했다는 의미가 있다.

- 포브스의 ‘오픈 뉴스룸’: 타 뉴스레터보다는 포브스의 편집권이 더 작동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언론사의 색깔이 드러나진 않는다. 때문에 다양한 분야를 커버하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플랫폼으로 대두되고 있다.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콘텐츠 편집, 결제, 정산 관리, 데이터 분석, 프로모션 운영 등 콘텐츠 발행과 판매에 필요한 인프라를 창작자에게 제공한다. 창작자는 콘텐츠 내용과 형식뿐 아니라 상품 구성이나 가격 정책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서브스택은 기존 언론과
직접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까?

서브스택이 이야기하는 ‘언론’과 기존 언론사가 이야기하는 ‘언론’의 결이 같을까? “보도와 오피니언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은 언론의 신뢰에 있어 좋지 않은 일”이라는 말이 있다. 유료 뉴스레터 붐이 인다는 건, 단순 사실이 아닌 사실을 기반으로 가공된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싶은 독자들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짜깁기의 급급한 저질의 기사를 넘어, 누군가의 관점이 담긴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합리적인 ‘주관성’의 힘이 기저에 깔렸다고 정리할 수 있다. ‘얼마나 명확하게 사실을 전하냐’의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독자들은 그 사실을 기반으로 전략적으로 재가공된 명쾌한 오피니언을 원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서브스택의 강점이자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이 될 수 있다.  


기존 언론사는 서브스택이 등장한 현상을 두고 그들의 한계를 느끼는 것보다, 뉴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언론사 업이 무엇이고,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할  있어야 한다. 서브스택이 채워주지 못하는  무언가, 그리고 서브스택창작자들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인용하는  무언가를 올바르게 제시해주는 주체가 누구인지 파악해야 한다.






뉴미디어의 과도기 속에는
정보를 대하는 성숙한 독자들이 존재한다

서브스택의 열풍을 그저 엄청난 혁신이라고만 받아들이는  위험한 생각이지 않을까. 콘텐츠의 가치보다도 그것을 발행하는 개인이 우위에 있다면, 그것도 역시  리스크를 동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대입하면 쉽다. 역사는  사실보다도 발견된 흔적을 토대로 이야기를 상상하고 해석한 전문가의 의견의 유통 기한이  길다. 그러려고 전문가 집단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결코 객관적인 사실을 등한시해서는  된다. (사실 이 명제는 인간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는가라는 답이 없는 문제에 봉착하지만..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코바치와  로젠스틸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는 전통 저널리즘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만 집중했다. 이해하도록 하는 데는 거의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전달받는 것을 넘어서 이해를 시키고자 하는 창작자 집단, 그리고 큐레이션을 통한 깊은 사고를 지향하는 수요자 집단이 등장했다. 뉴스레터의  속엔 ‘사실 ‘의견 대하는 태도가 점점  성숙해지고 있는 공급자와 수요자 집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뉴미디어는 현재 과도기에 놓여있다. 서로가 서로를 대체할 것이라며 으르렁대고 있는 과도기의 단계를 거쳐, 명확한 사실 보도와 다채로운 인사이트를 함양한 오피니언이 균형 있게 발달해 보다 성숙한 언론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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