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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Aug 29. 2021

'어필 사이언스'가 그려나갈 새로운 무역 생태계

식품 코팅 스타트업 어필 사이언스와 고대 그리스 올리브

[출처] Unsplash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형마트에서 폐기되는 음식물 쓰레기의 절반 이상이 과일이라고 한다. 과일이나 채소는 특히나 보관법도 각각 상이하고, 상하는 시간도 다르기 때문에 유통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밖에도 농산물은 생산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상당한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 수급 변동에 따라 농부가 밭을 갈아엎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시장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유통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플라스틱이 발생하는 등 많은 비효율이 초래된다.


이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 신선도 보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려 수확 후 발생하는 손실을 줄이기 위한 기술이 등장했다. ‘어필 사이언스’, 식품 코팅 기술을 Apeel(어필)을 개발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타트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농산물 손실을 줄여 공급자와 유통자, 소매상이 모두 이득을 보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출처] sustainthemag.com


어필 사이언스(Apeel Sciences)는 “Greater Abundance for ALL”을 미션으로, 식품 코팅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과일이나 채소에 코팅 용액을 도포해 수명을 최소 2배에서 최대 5배까지 늘리는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식품은 아보카도, 라임, 사과, 오렌지 등이고 기술적으로는 파인애플, 토마토, 딸기 같은 식품도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어필은 과일과 채소의 형태와 구성 성분에 따라 적용되는 코팅의 구조가 모두 달라서, 취급 품목을 단번에 급격하게 늘리기는 어려운 기술이라고 한다.)


Apeel(코팅 기술, 이하 ‘어필’)은 기존 농산물의 껍질과 씨앗에서 추출한 지방질로 만든 코팅제다. 이를 바르면 식품을 상하게 만드는 산소나 에틸렌 같은 요소를 차단할 수 있어, 신선식품의 산화 과정을 늦출 수 있다. 색깔과 냄새, 그리고 무맛의 코팅제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코팅이 되어있는지 조차 인식하기 어렵고, 인체에 전혀 무해하기 때문에 모르고 먹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의 기술은 2016년 FDA로부터 문제가 없다는 서한을 확보했다.


어필 사이언스의 대표적 상품으로는 ‘아보카도’가 있다. 코팅으로 아보카도를 1주일 이상, 즉 유통기한을 2배 이상 늘리는 데 성공한 셈이다. 기존 아보카도 재고 폐기율은 약 40% 수준을 웃돌았는데, 이 기술을 통해 미국 중부의 하프스라는 체인마트는 약 3개월 경과 아보카도 폐기량을 60%까지 감소시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출처] packaging-360.com

어필 사이언스는 제임스 로저스(James Rogers)가 2012년에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보조금으로 창업했다. 최근 시리즈 E 펀딩 라운드에서 2억 5,000만 달러(약 2,929억 원)를 조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기업가치는 무려 20억 달러(약 2조 3,400억 원)를 인정받았다. (2021.8)


CEO 제임스 로저스는 재료학 박사로, 태양에너지 분야에서 일하던 전문가였다. 창업 당시 태양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특수 페인트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굶주림’에 관한 팟캐스트를 듣고 식량 분배 문제에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필요한 식량의 양은 이미 충분했지만, 그렇게 생산된 음식이 부패하고 버려지는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포착했다. 식량 부패를 개선하면, 식량 공급이 어려운 국가에도 통로가 열릴 수 있다고 믿었다.



� 어필이 식품 보존기간을 늘리며 가져온 사회적 이점을 크게 3가지로 정리해보면,


1. 온라인 식품 판매 안전도가 증가했다.

어필은 온라인 쇼핑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신선도 보존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며 식품 배송은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상당 부분 옮겨졌다. 어필 사이언스의 코팅 기술로 보존 기간을 늘릴 수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안전한 식품을 배송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 쉽게 유통하지 못했던 상품도 유통이 가능해졌다.

상대적으로 유통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생산국들이 식품 유통에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백신의 콜드 체인 시스템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콜드체인 시설을 구축할 수 있는 선진국들은 화이자 백신을 유통할 수 있었지만, 저개발 및 빈곤국가들은 공급 자체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는 경제적 비용도 물론 중요했지만,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는 콜드체인 인프라를 갖추기 어려웠던 부분도 컸을 것이다.


3. 기후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다.

식품을 ‘코팅’했기 때문에, 포장재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포장재의 목적이 ‘식품 보존’인 만큼, 아무래도 이전보다 포장재 사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어필은 친환경적으로 생산된다. 어필은 다수의 유기 폐기물에서 지방질을 추출해 분말을 만들고, 이 분말을 다시 코팅하기 편하도록 액화시켰다. 환경에 피해가 덜 가는 방법으로 신선도를 유지한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출처] Unsplash

어필의 CEO 제임스 로저스는 부패를 막는 기술을 개발하면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굶주림’이 생존에 위협이 되는 국가들에 도움을 주기 위해선 음식 부패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보았던 것. 이미 식량은 초과 공급 상태에 다다랐고, 결국 분배의 문제는 버려지는 양을 막아야 해결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농산물 생산국들의 인프라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어필의 새로운 매력을 느꼈다. 농산물을 수확하고 가공하는, 하지만 경제적 기반과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은 국가들이 수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해답을 고대 그리스의 올리브 산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출처] Unsplash

올리브는 고대 그리스에 굉장히 귀한 상품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올리브유와 포도주, 소금, 말린 생선을 기반으로 해상교역을 시작했다. 이것이 인류 최초로 원거리 항해를 시작해 지중해 교역망을 구축한 역사로 여겨진다.


과실을 얻으려면 수년을 기다려야 하듯이, 올리브 나무도 곧바로 수확할 수 없는 장기적 투자 상품이었다. 하지만 올리브 나무는 그리스의 사막성 기후에서 자라느라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려야 되는 등 생존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올리브를 ‘기름’으로 가공해 한번 생산하면 유통기한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기술을 발견했다. 덕분에 먼 거리에 있는 지역과의 교역은 금, 은, 보석 등에 한정됐던 그리스 무역을 해운을 통해 처음으로 농산품을 끌어들여 국제적인 무역 체계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농산품 보존 기술을 늘리는 전략은, 생산국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농산품을 생산할 수 있지만 유통하는 데엔 기술적 한계를 맞닥뜨린 국가들에 더더욱 경쟁력을 가져다줄 수 있고, 이는 곧 부가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리스는 올리브기름 산업이 발전하며, 과수원을 위한 수로, 보관을 위한 흑화 도자기, 선박 갤리선이 등장하는 등 다양한 산업의 부흥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필이 생산국에 도입되어, 이들이 만들어 낼 새로운 무역 생태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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