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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Sep 01. 2021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다루는 현대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출처] 헤럴드경제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최근 '죽음', 그리고 데미안 허스트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생겼다. 그 시작은 톡방에서 공유받은 <그림 도둑들> 영상이었다. 데미안 허스트는 영국의 현대 예술가로, 죽음과 부패를 표현한 포름알데히드 작품으로 터너상을 수상했다. 현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로도 유명한데, 두개골에 다이아몬드를 박아 논란(웬만하면 논란이 다 일었다고 보면 된다)을 일으켰던 <천사의 해부학>이라는 작품의 가격은 무려 1,100억 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는 죽음을 소재로 적나라하게 세상과 소통한다. 상당히 파격적이고 충격적이기에, 그는 매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예술의 한계를 설정하지 말라는 의견과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은 항상 그를 중심으로 대립해왔다. 나 또한 그의 작품을 접하며 머리와 심장이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영상을 톡방에서 공유해준 언니와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그는 내게 꽤나 큰 충격을 가해준 인물이다. 나는 데미안 허스트를 생각하며 2단계의 사고 변화가 있었는데, 오늘 그 과정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직관적으로 '징그럽다, 잔인하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은 우리가 '죽음'을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게 만든다. 데미안 허스트를 잘 모르는 이들도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갇힌 상어는 어디선가 들어봤을 수도 있는데, 상어의 시체를 용액 속에 가둬 박제해둔 작품은 지금까지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체를 작품에 이용하다니, 비윤리적인 거 아니냐'하는 여론, 사실 나도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천 년>, 1989

소의 머리, 구더기, 그리고 파리를 다뤘던 <천 년>이라는 작품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작품을 살펴보면, 두 개로 나눠진 유리상자에 각각 피 흘리는 소의 머리가 파리가 있고, 그 사이는 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죽은 소의 머리에 접근하는 파리들은 소가 있는 칸에 설치된 전기장치에 감전되어 죽는다. 그리고 소의 머리에서 자라는 구더기들은 동시에 파리를 먹으며 파리가 된다. 굉장히 철학적인 작품이지만,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굉장한 거부감이 들었다. 부정적인 감정만을 가져오는 것 같은 작품을 도대체 왜 만드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술을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고, 계속해서 자극적인 것들만 추구하려는 그의 태도가 바람직한 예술가의 태도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감정만 들었다.


그로부터 1주일 남짓이 지났지만,  여전히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또 다른 친구와 데미안 허스트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생겼다. 그때 그 친구가 전해준 답변으로 생각이 많은 부분 바뀌었다. 그는 ‘우리는 죽음과 같이 살고 있지만, 그것을 적나라하게 마주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고 했다. 육식만 보더라도, 우리는 가공된 육류 식품들만 접할 뿐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죽는지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보다 훨씬 잔인하고 폭력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죽음을 공포스럽게 생각하지만, 선입견을 바꾸고 죽음에 대해 온전한 감정으로 마주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고, 허스트는 그 길을 열어준 예술가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장례식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그 누구보다 친숙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와 달리 내가 마주했던 죽음은 장례식장에서의 죽음들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여러 형태의 죽음 중에서 가장 정적이고 정상적인 죽음일 수 있다. 따라서 나한테 그의 작품은 처음 접했던 적나라한 죽음이었기에,  처음 보곤 반감이 일었던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수도. 하지만 이젠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그가 죽음을 다뤘던 작품을 보고 잔인하다고 비아냥거릴게 아니라, 우리 곁을 항상 감싸고 있는 죽음에 대해 보다 잔잔하게 다가갈 수 있는 태도도 필요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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