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웃음코드가 잘 맞는 7명이 모이면

'별 보러 가자'는 그렇게 우리의 대표 BGM이 되었다.

by YEON


굿모닝, 울레리! 6일 차의 아침이 밝았다. 롯지에서 잤던 첫날밤이라 우리에겐 의미가 컸던 지난밤이었는데, 굉장히 추워서 침낭을 꽁꽁 싸매고 자느라 혼이 났다. 아직 고도가 얼마 높지도 않은데 올라가면 얼마나 더 추워질지 조금 걱정도 됐던 아침이었다.


일어나서 짐을 다시 패킹하고, 아침을 먹으러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안타깝게도 전날 뜨거운 물을 다 쓰는 바람에 샤워는 못하고 잤지만, 그런대로 개운하게 맞이했던 산속 롯지에서의 첫 번째 아침이었다.



아침 메뉴로는 에그 커리 라이스로 선택했다.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승협은 나와 똑같은 메뉴를 선택했고 유정은 치킨 커리를 주문했는데, 결과는 치킨 커리의 압승이었다. 아니 커리에서 어떻게 이렇게 시큼한 맛이 날 수가 있담! 한국인에게 신맛은 상함과 정상 그 어딘가의 애매한 경계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부정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음식 맛이 나에겐 딱 그랬다. 그런대로 먹을 만은 했지만 승협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많이 남겼다. 나는 하루 종일 산을 타야 한다는 강박감에 열심히 그릇을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바람을 쐬러 앞마당에 나갔는데, 귀여운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엔 낯을 많이 가리더니, 갈 때쯤 되니 옆에서 애교로 부리던 녀석. 너무 귀여워서 핸드폰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 말고도 트레킹을 하며 다양한 동물 친구들을 만났는데, 하나같이 애교도 많고, 다들 정말 순했다. 동물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묵는 숙소에 고양이나 개들이 있으면 옆에 앉아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오전 8시 즈음 우리의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늘의 코스는 울레리(1,960m) > 반탄티(2,210m) > 고레파니(2,860m)였다. 트레킹 시간은 약 4시간 30분 정도였지만, 점심시간까지 합치면 1-2시간가량 더 소요됐던 것 같다.



올라가면서 만났던 다양한 친구들의 모습을 렌즈에 열심히 담았다. 말, 소, 당나귀, 염소, 개, 닭,

그리고 고양이까지. 이들이 사람들과 함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아, 내가 진짜 히말라야에 있구나!’하고 실감 나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삶이, 그리고 이 광경이 바로 히말라야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존과 방생은 그만큼 배설물도 자유롭게 어느 곳곳에나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배설물과 어우러지는 삶도 초반엔 힘들었지만 나중엔 트레킹화로 밟고 가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져버리고 말았다.)



어느 여행지를 가든 간에, 이 장소를 생각하면 가장 기억하고 싶은 뷰를 마음속으로 정하곤 한다. 그리고 이날 트레킹을 하며 네팔의 대표 뷰를 정할 수 있었다. 바로 위 사진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네팔’하면 가장 떠오르는 뷰이다. 푸르른 하늘, 높고 광대한 산, 그리고 형형색색의 기들. 롯지에서도, 그리고 네팔 곳곳에서도 가장 많이 봤던 풍경이 아니었나 싶다. 이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내 핸드폰에는 위 세 가지 요소가 다 나온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 참 많았다.



어느 구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드디어 우리들 눈앞에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처음 본 순간, 신나기도 하면서 조금은 두려운 감정도 들었다. 이제 진짜, 꽤나 높이 올라왔나 보구나! 고산병이 우리 모두에게 오지 않길 바라며, 그리고 오더라도 우리가 꼭 이겨낼 수 있길 바라며 다 같이 손 붙잡고 끝까지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열심히 산을 오르다, 반탄티에서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도착하니, 이곳은 가히 만남의 광장이었다. 한국분들, 외국분들, 다양한 트레커 분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계셨다. ABC로 올라가는 루트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식사를 같이 한 번이라도 했던 분들과는 후에도 식사를 같이 하거나, 혹은 숙소를 같이 쓸 확률이 높다. 초반엔 눈빛을 주고받다가, 어느샌가 익숙한 동료가 되어 그들에게 인사를 건넬 때,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때 받았던 긍정적인 기운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처음 본 사이, 코스가 겹쳐 중간중간 몇 번 봤던 사이 모두 안부를 물어가며 서로 격려해주는 트레커들의 문화가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점심에 시킨 메뉴는 원래 치즈 토마토 스파게티였지만, 주문이 잘못 들어가 치즈 토마토 피자가 나왔다. 그냥 먹겠다고 하고 먹었는데, 웬걸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에너지를 쓴 바람에 모든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때 먹었던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한 조각도 남김없이 클리어!



점심을 먹고 조금 숨도 돌리다 산행을 재개했다. 열심히 오르다 쉬는 시간에 크로커스 대원들끼리 또 하나의 웃긴 해프닝이 생겼다. 오랜만에 눈을 봐서 신난 우리들은 눈사람을 만들자는 제안에 바로 착수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탄생한 ‘지옥에서 온 눈사람’. 분명 우리가 원하던 눈사람은 올라프 같은 귀여운 캐릭터였는데, 우리가 만든 눈사람은 어디가.. 좀 무섭고 아파 보였다. 콜라병을 물고 있지만 찌든 삶에 버거운 나머지 소주병을 꽂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절대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당의 느낌이 폴폴 나는 눈사람이었다. 우리의 예술적 능력에 한탄하며 대원들과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대원 중 한 명의 제안으로 시작된 눈덩이 탑 쌓기 게임. 아무런 내기도 걸지 않았지만 우리 7명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목숨 걸고 게임에 참여했다. 저 맨 위의 눈덩이는 성혁이 쌓은 건데, 저게 진정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버티다 결국 쓰러지긴 했지만, 꽤나 중심을 잡고 버텨줘서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마음 잘 맞고 웃음이 많은 이들이 모이면 쌓인 눈 하나로도 엄청난 행복감을 안겨줄 수 있다. 중고등학생들을 보며 ‘낙엽만 굴러가도 좋을 나이’라고 하는데, 딱 우리들의 모습 보고하는 말 같았다. 사소한 것도 함께 나누며 웃을 수 있는 소중한 동료들이 있어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나중에 찍힌 사진을 확인하니 쉬지 않고 떠드는 우리 7명의 모습을 포터분들께서 뿌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터분들과 조금은 어색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 가서는 같이 노래도 부르고 으쌰 으쌰 하며 정말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웃다가, 걷다 보니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고레파니에 입성했다. 고레파니는 해발 도로 2,860m에 위치해있고, 당장 내일부터는 3,000m를 넘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숙소로 향했다. 고레파니는 아래쪽, 위쪽 총 두 개의 숙소로 나뉘는데 우리들의 숙소는 더 높은 곳에 있었다. 초입에서도 약 30분 정도를 더 걸어, 늦지 않게 숙소에 도착했다.



고레파니의 숙소는 트레킹 전체를 통틀어서 제일 좋았던 숙소였다. 무려 방마다 개인 화장실이 비치되어 있고, 가장 중요한 뜨거운 물이 무제한으로 나온다. 방은 많이 추웠지만 화장실과 샤워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숙소로, 가히 말해 트레커들에겐 천국 같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 1층에 난로도 있어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도착한 직후 룸메랑 롯지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고 얼마 되지 않아 구름이 몰려오고 롯지 밖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일 새벽에 푼힐 전망대에 가서 멋진 일출을 즐겨야 하는데, 그전까지 날씨가 개길 바라며.



한 가지 특이점은 네팔 롯지에서 한국식 라면을 판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중 절반 이상은 이날 라면을 시켜먹었다. 아무래도 롯지가 많이 추웠기 때문에 뜨듯한 국물이 생각났을 거다. 스키장 라면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것보다 몇 배는 더 맛있었던 히말라야 중턱에서 먹는 라면이었다. 산을 오르며 입맛이 없을 때, 롯지에서 파는 Korean noodle soup은 한국 트레커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다.


식사를 한 후, 좀 쉬다가 다 같이 여행노트를 들고 내려와 일기를 쓰고, 이제까지 적었던 일기, 그리고 트레킹 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우리가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주제 중 하나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였는데, 대원들의 진지하고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직업적 성공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이루기 위한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겨서 무척 행복했다. 그리고 모두가 개인적으로 하나씩 꿈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이때 ‘큐레이션’ 이야기를 했다. 지식적으로, 감정적으로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공유하거나 기획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책방을 차리고 싶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그날이 오면 책을 좋아하는 팀원들이 많으니 꼭 큐레이션을 받아 책방 한편에 섹션을 만들어두고 싶다.

이때 일기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틀었던 BGM은 적재의 ‘별 보러 가자’였다. 잔잔하게 깔았던 음악이었는데, 대원들 역시 그날이 주는 에너지가 좋았나 본지 그 노래를 들으면 아직도 그때 생각이 난다고 많이들 이야기해준다. 나도 그 노래만 들으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의 꿈을 이야기했던 소중했던 시간들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마음 따듯해지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끝으로, 우리는 내일 일출을 보러 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 히말라야 원정을 통해 각자의 삶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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