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인생 일출을 만났다.

히말라야에 오니 12시간 트레킹도 해봅니다

by YEON


굿모닝, 고레파니! 오늘은 일출을 보러 새벽 5시 40분에 푼힐 전망대로 출발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냥 보는 일출도 아름다운데 히말라야의 일출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대원들 모두가 기대감에 부풀어 롯지를 떠나 푼힐로 향했다.


준비를 마치고 나와 풍광을 렌즈에 담아보았다. 어젯밤은 강한 눈바람 덕분에 산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침이 되니 그런대로 날씨가 괜찮아서 다행이었다. 여러모로 날씨 요정이 우리와 함께 해준 히말라야 트레킹이었다.



살면서 처음 껴본 아이젠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으로 남겼다. 뭐든지 장비빨이라고 아이젠이라는 도구를 장착하니 괜히 초보 트레커를 벗어난 기분이었다. 가이드 시리와 동욱이 어떻게 끼는지 옆에서 차근차근 도와준 덕분에 어렵지 않게 착용할 수 있었다. 이 아이젠으로 여러 번 혼이 난 적이 있었는데, 식당이나 숙소 즉 실내에 들어갈 땐 바닥 보호 차원에서 아이젠을 떼고 들어가는 게 예의라고 한다.



그렇게 우린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헤치고 나가 푼힐로 출발했다. 어젯밤부터 몸이 좋지 않다고 얘기했던 승협의 낯빛이 안 좋아서 내심 걱정이 됐다. 얼마 오르지 못하고 많이 힘들어해서 동욱과 나, 그리고 시리가 후발대로 올랐다. 속도를 늦춰 천천히 걷고 오르는 동안 해가 서서히 뜨고 있었다. 행여라도 푼힐 정상에서 보지 못할까 걱정하며 조금 속도를 내서 오르던 도중에 맞이한 일출의 순간. 동욱과 멈춰서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 멀리 구름 사이로 해가 오르는 장면은 내가 봤던 일출 중 단연 베스트였다. 아름다운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 ‘아, 우리 아직 푼힐이 아니지’라며 현실을 깨닫고 다시 속도를 내서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왁자지껄한 트레커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저 멀리 카메라로 열심히 일출을 담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체력을 모두 끌어 모아 정상까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오로지,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쉽게도 해가 많이 뜬 상태였지만 풍광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때 신이 나서 정상까지 달리다가 무릎을 삐끗한 게 트레킹 도중 저질렀던 가장 어이없는 실수였다.


드디어 푼힐 전망대(3,210m)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 늦었지만, 찬연한 경치를 눈에 담을 수 있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쪼그려 앉아 경치를 구경하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코스가 겹쳤던 대부분의 트레커들을 한 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이곳은 역시나 만남의 광장이었다. 한국에서 온 단체팀이라 인사도 몇 번 했던 대학교 봉사팀도 푼힐에서 재회했고, 첫날 점심을 같이 먹었던 마리오도 다시 만나 사진도 여러 장 같이 찍었다. 너무나도 유쾌했던 푼힐에서의 바이브, 기억에 많이 남는 순간이다.



단체 사진도 남기고 히말라야 풍경도 구경하면서 다음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 하산을 준비했다. 내려가면서 알았던 사실이지만, 원래 내려갔어야 하는 시간보다 많이 늦은 시간에 내려가는 거라고 하셨다. (우리가 신나 보여서 차마 내려가자는 말을 못 하셨다고.) 3,000m부터는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나를 포함한 다른 대원들은 아직까진 괜찮은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고레파니 숙소에 도착해 조식을 먹었다. 메뉴가 어느 것들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날은 새벽부터 몸을 쓰기도 했고 무거운 메뉴는 안 들어갈 것 같아서 가벼운 메뉴로 주문했다. 식빵 위에 야채볶음과 계란 프라이를 차례대로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다. 그리고 완숙보단 반숙만 찾아먹는 완전한 ‘반숙파’인 나에겐 최고의 식단이었다. 역시나 어떤 메뉴를 시켰는지도 모를 정도로 싹싹 긁어먹고 짐 패킹을 마무리했다.


금일 코스는 고레파니(2,860m) > 푼힐(3,210m) > 고레파니 > 데우랄리(2,987m) > 반탄티(3,180m) > 타다파니(2,630m) 총 6시간 30분의 코스였다. 가이드 시리가 처음으로 오늘은 힘든 날이 될 거라며 귀띔해주셨다. 본격적으로 3,000m를 넘는 첫날이기 때문에 고산병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출발 전부터 당부해주셨다.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선 넥워머, 비니, 장갑 등 모든 방한용품을 착용해 체온 유지에 힘써야 한다. 트레킹을 하다가 덥다고 맘대로 벗어던지게 되면, 그렇게 체온을 뺏겨 고산병에 노출되기 쉽다. 그리고 지난날 밤에 각자의 보온병에 채워 넣고 품에 안고 잤던 따또빠니(뜨거운 물)를 주기적으로 마셔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시리가 이야기해줬다.


따또빠니는 히말라야 트레커들 사이에서 통하는 일종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밤이 워낙 춥기 때문에 카페테리아에서 ‘따또빠니’를 주문하고 보온병을 건네면 스태프분께서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한가득 담아주신다. 이 병을 난로 삼아 품에 안고 자면 그럭저럭 따듯한 밤을 보낼 수 있다. 그렇게 식은 물을 다음날 트레킹을 하면서 섭취해주면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단, 물 맛이 좋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아쿠아 탭스(정수 알약)를 넣거나 주문할 때 차(tea)로 주문하면 더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니 이제는 아이젠과 스패츠 없이 오르기 힘든 구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날씨도 첫날과는 다르게 많이 추워졌고, 무엇보다 날씨가 굉장히 흐렸다. 눈과 비가 섞여서 계속해서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탓에 결국 얼마 가지 못하고 가방 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쓸 수밖에 없었다. 걷다 보면 아무리 추워도 땀이 나기 마련인데, 우비를 입으면 그마저도 통풍이 안되어 외부와 내부가 모두 습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처음엔 이 상태가 굉장히 찝찝했는데, 며칠 지났다고 이마저도 익숙해졌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열심히 산을 오르던 도중 찾아온 점심시간. 이번 점심시간에는 1인 1 메뉴가 아닌 다양한 메뉴를 시켜 다 같이 나눠먹는 시간을 가졌다. 모모(만두), 라면, 스파게티, 달밧(밥과 국) 등 처음으로 다양한 메뉴를 시켰다. 배부르게 먹고 쉬던 도중 동욱이 대원들에게 슬쩍 정관장 에브리타임을 건넸다. 안전부장으로서 우리가 고산병이 오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이때부터 그는 우리의 ‘홍삼맨’이라 불리게 되었고, 우리는 그가 준 에브리타임 덕분에 힘내서 오를 수 있었다. (우리의 안전부장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승협이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지난날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푼힐을 오르는데 무리한 것이 체력을 급격하게 떨어뜨렸던 원인이었던 것 같다. 고산병이 와서 아무것도 못 먹고, 얼굴색이 안 좋아지는 팀원을 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호전되기를 바라며 점심을 먹고 긴 텀을 두고 쉬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걷다 보니 땀은 나는데, 비는 오니 우비는 써야겠고. 덕분에 후리스 안이 땀으로 가득 찼다. 오늘부터는 고산병 예방 차원에서 씻지도 못하는데, 조금 찜찜했지만 뭐 별수 있나.


어제보다는 속도를 줄여 트레킹을 했기에 예상 도착 시간을 훨씬 넘겼지만 무사히 목적지인 타다파니에 도착했다. 이날 우리는 7시가 거의 다 돼서야 숙소에 도착했는데, 이미 해가 지고 어두컴컴한 뒤였다. 눈은 오고, 바닥은 푹푹 빠지고, 대원은 아팠다. 각자 가방에서 헤드랜턴을 꺼내 쓰고 서로의 발걸음을 비춰주면서 이동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야생 속을 걸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만약 가이드 없이 혼자 트레킹을 하다가 이런 상황에 마주한다면 어땠을까.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었을까, 아니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까?‘ 여러 생각에 파묻혀 길을 걸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 베테랑 시리 덕분에 목적지에 잘 당도할 수 있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40분부터 시작됐던 산행은 저녁 7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무려 12시간을 넘게 걸었던 날이었다. 체력을 많이 소비한 탓에 롯지에서의 밥은 세상 맛있게 비웠지만, 밤에 로비에서 일기를 쓰던 도중 머리가 너무 아파오기 시작했다. 시리가 타이레놀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빨리 낫고 싶어 타이레놀 2개를 먹고, 씻지도 않고 침낭에 들어갔다. (따또빠니도 대신 받아주고 밤늦게까지 챙겨준 룸메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 증상이 고산병은 아니길 바라며, 오늘 하루는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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