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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Oct 07. 2021

버섯이 인간보다 나은 이유

<환상의 버섯(2019)> 다큐멘터리를 보고 든 단상


살면서 버섯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는가? 조리하기 쉬운 덕분에 집에 있을 땐 유용한 반찬으로, 산을 탈 때면 이름 모를 버섯들을 벗 삼아 걷기도 했지만 버섯이 삶에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넷플릭스에서 <환상의 버섯>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이 영화는 버섯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180도 바꾸어 주었다.


균류의 일종인 버섯은 꽤나 오랜 세월 동안 지구를 지키고 있던 늠름한 생명체였다. 영화를 보며 이 작은 버섯이 외모, 능력, 쓰임새 등 인간과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그 성격이 출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버텨온 10억 년의 짬밥은 우리 인간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출처] 다음 영화
기름 흡수력으로 석유 유출 같은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해 주고,
땅속에서 나무들을 연결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버섯.
환상적인 버섯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영화 소개 中

대부분의 내용은 <환상의 버섯>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버섯은 한 마디로 균류 포자의 유성생식 기관이다. 균류에는 씨앗이 없는 대신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매우 작고 가벼운 기관인 포자를 가지고 있다. 판매용으로 깨끗이 씻겨 있는 버섯이 아닌 야생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을 툭 건들면 작은 포자 알갱이들이 튕겨져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균’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세상에 해로운 화합물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버섯은 다르다. 오히려 우리 인간보다도 세상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필자의 사고를 지배했던 생각들을 재구성해 ‘버섯이 인간보다 나은 이유’ 3가지를 전하고자 한다. 비록 쓰임새와 형태와 같이 여러 가지 부분에서 인간과 버섯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 인간도 자연에서 탄생했고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비교가 완전히 헛된 비교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아무쪼록 이번 글은 어디까지나 재미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버섯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가진 녀석이다

[출처] Unsplash

어쩔 땐 채소 같고, 어쩔 땐 고기 같다. 하나의 종도 어떻게 조리를 하든 간에 그 맛이 다채롭게 변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엔 요리로, 맛으로 즐길 수 있는 버섯이 300종이나 존재한다.


영양소도 마찬가지다. 버섯은 동물이 가지고 있는 단백질도 많이 있고 식물이 가지고 있는 비타민, 무기질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신비로운 식품으로 여겨지며 '불멸의 식품'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만큼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여러 영양소를 보유하고 있다.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으로 스테로이드 물질인 에르고스테롤을 함유해 혈중 악성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다, 자외선을 받으면 비타민 D2로 전환되어 골다공증을 예방해 주기도 한다. 또한 수용성 식이섬유인 베타글루칸이 들어있어 면역력 강화, 항암 효과도 보여준다.


하나의 존재에 이처럼 다양하고도 유용한 매력을 갖고 있다니. 이 면에 있어선 버섯의 압승이다.



아닌 척하지만 엄청난 파워를 지닌 놈이다

균류는 공격력 있는 다양한 효소를 생산하기에 역사 속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많이 쓰였다. 균류가 공격하는 상대는 다른 미생물, 즉 다른 균류나 세균, 바이러스 등이었다.


실제로 서양 의학에서도 균류를 사용해 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합성 페니실린이 나오기 전인 미국의 남북 전쟁 때는 부상병이 발생하면 곰팡이가 핀 빵 한 조각을 상처 부위에 얹어 항생작용이 일어나도록 처치했다고 한다. 균류는 오랜 기간 생존해온 만큼, 조용하지만 파괴력 있는 화합물로 우리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균류 중에서도 버섯, 그리고 버섯의 공격력 하면 가장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은 독버섯일 것이다. 특히 독버섯은 인간에게 식중독을 유발하거나 간이나 신장을 망가뜨리기도 하며, 심할 경우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강한 독소를 퍼뜨리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국립수목원에서는 '독버섯 바로 알기' 무료 앱을 출시하기도 했다고!) 산 중턱마다 귀엽게 빼꼼하고 있는 놈들조차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니 말이다.


오늘날 생태계를 군림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인간이 갓 태어난 모습을 생각해 보면, 버섯의 위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겠지만 우리는 어느 생명체보다 약한 존재로 태어난다.)



버섯은 분해력과 생명력을 모두 지닌 창조의 화합물이다

[출처] Unsplash

지난 2019년, 브라질의 퇴적물에서 신기한 화석이 발견됐다. 무려 1억 1,3000만 년이나 된 온전한 형태의 버섯이었다. 인류를 포함한 동물은 6억 5,000만 년 전에 균류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밝혀졌다. 즉, 생명의 근원은 균류이고 그로부터 한 가지가 나온 게 동물이 되었다는 의미다. 동물은 영양소를 세포로 된 주머니, 즉 위에 담는 방법을 택했고 땅속에 남은 균사체는 몸 밖에서 영양소를 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소행성과 충돌하며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이 햇빛을 받지 못했을 때, 즉 대재앙이 일어났을 때에도 균류는 살아남아 지구를 물려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재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균류, 즉 버섯은 자연을 분해하는 능력을 지녔다. 자연에 법칙에 맞게 죽은 생물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양분으로 재활용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만약 인류에게 버섯이 없었다면, 우린 생명을 다하고 잔뜩 쌓인 폐기된 식물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온전히 숲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숲의 소화관인 버섯의 역할이 컸다.



같은 맥락으로 노루궁뎅이버섯을 예로 들 수 있다.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맛 덕분에 인기가 많고 비싼 버섯이지만, '카와기시'라는 일본인 연구원에 의해 1993년 경 이 버섯의 놀라운 효능이 밝혀졌다. 그가 발견한 결과에 따르면 노루궁뎅이버섯은 생명체의 신경을 자극해 신경을 다시 자라나게, 즉 재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을 지닌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신경 재생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독성이 없는 음식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 버섯을 알츠하이머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제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버섯은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성스러운 능력 또한 지닌 위대한 화합물이다.






서로를 죽고 죽이고, 결국 환경을 파괴하며 자멸의 톱니바퀴를 자처한 파괴적인 우리 인간들에게 버섯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죽은 이를 품을 줄 알고,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버섯. 우리가 흔히 만나는 버섯의 모습은 마트 한편에 비닐봉지 속에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을 때지만, 그들의 존재 목적에 한 뼘 더 접근해 보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경이로운 생명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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