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기억
사건을 경험할 때 우리는 기억을 그냥 저장하고, 나중에 어떤 계기에 의해 저장해놓은 기억을 읽는다. 이때 회상이나 재인식을 하는 동시에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 사건을 재구성한다.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한 실제 기억은 물론 그 사건 이후의 정보가 모두 사건을 재구성하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정보가 통합되어 특정한 세부사항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된다. 기억이 하나로 통합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것 같다. 내 옛사랑의 기억들은 이미 모두 재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니랑 내랑 두 가지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게 사랑이라는 건데 그 두 개의 이야기 사이에 간극이 조금 큰 것 같다. 서로 기억하고 있는 날짜가 다르더라. 나는 좋았던 날들을 생각하고 있다면 니는 나빴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더라. 니 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나는 쓰레기구나 싶었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우리의 기억은 다를까? 누가 그러더라고 나는 소설처럼 각색하는 것 같다고.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감정 기복이 생긴다고 표현은 안 하지만 표정이나 분위기에서 느껴진다고 말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매번 힘들 때는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달래니까 영화 같은 극적인 요소들이 내 기억을 재구성하는 게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래 맞다. 내 기억은 거짓된 기억이다. 그 거짓된 기억으로 인해 미화된 나의 이야기는 삼류 로맨스 영화와 같았고 그 이야기의 주연들은 모두 미화된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그 기억을 놓으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에 내가 취해서 나 혼자 떼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질질 끌려가는 내 모습이 갑자기 비굴하고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잠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그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
거짓된 기억으로 거짓된 모습으로 남아있으면 안되니까.
그저 내랑 니는 기억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니 같은 사건도 다르게 받아들인다. 내가 받아들인 것은 그렇고, 니가 받아들인 것은 이런 것이니. 어찌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