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단둘이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아구아스 깔리엔떼 (Aguas Calientes)로 향한다. 저녁 무렵에 기차를 타고 산속을 가로지르면 일반적인 세상과는 다르게 금방 어둠이 찾아오고 노을의 주황빛을 좀처럼 마주하기 어렵다.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중요하고 특별한 것이 존재할 것 같았고, 카메라를 쥔 채로 창 밖을 바라보며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을 간직하려고 했다. 마치 보물 탐사대처럼, 기차보다 빠르게 시선을 옮기면서...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점점 더 어두워지더니 내가 기대했던 특별한 존재는 나타나지 않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했다. 쾡한 눈에는 붉은빛이 돌았고 피부는 건조해 보였으며 무엇에 그렇게 쫓기는지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내 어둠이 찾아와 가치 있어 보이는 것들이 점점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더니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허탈한 감정을 뒤로한 채,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기차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초점이 흐려지면서 내가 지금 타고 있는 '기차'에 대한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기차' 란 무엇일까?
버스보다 기차를 좋아한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고향이 부산이다 보니 이동할 때 버스보다는 기차를 선호하고 낮과 밤이 공존하는 시간대를 좋아한다. 낮에는 봉선화로 손톱 물들이듯 노을빛으로 기차 안이 주황색으로 젖어드는 모습에 녹아내리고, 밤에는 창가에서 가로등 불빛을 보거나 초점을 옮겨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멍하니 내 모습을 응시하고 라디오나 노래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하며 그들의 말을 귀에서 녹여 듣는다. 그렇게 잠시 멍 때리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일상 속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여 사용하는 게 얼마나 될까? 시공간을 나에게 집중시키는 그 느낌을 기차에서 느낄 수 있었다. 주변 소음은 귀로 들어오지 않거나 그대로 흘러 지나가버리고 눈에 보이는 물체와 풍경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그대로 스쳐 지나가버린다. 어쩌면 지금 밤기차를 타고 숲속을 통과하는 이 순간, 나에게 집중하라고 주어진 시간이 아닐까?
나에게 집중을 해본다. 호흡을 가다듬고 소음을 무시하고 풍경을 멀리하고 내 눈을 바라본다. 시선을 고정시키고 초점을 날려버리면 소리들이 먹먹해지기 시작하더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지만 풍경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시공간을 나에게 집중시키고 떠오르는 기억을 찾아다닌다. 점점 나라는 존재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갈수록 더 세세한 기억을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마주한 나의 수많은 기억들 속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기차 밖 풍경이 초록색이다 보니 2011년 7월까지 거슬러 올라가 "YGK 국토대장정"이 생각났다. 깊은 산속엔 도로 위를 걷는 우리들만 존재했고, 우리의 목청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는 경쾌했으며 에너지가 넘쳤다. 막내였던 나는 형, 누나들을 잘 따랐고 그들에게서 풍겨지는 아우라는 20살이었던 내가 봤을 때 '어른'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여행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들과 수도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분교의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기도 했으며, 새벽같이 일어나 형, 누나들에게 간식을 챙겨주며 비몽사몽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스텝들과도 대화를 하고 지냈으며, 점점 그들과 가까워지고 유대감이 생기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서로의 이름과 나이였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 사람들의 얼굴을 내 추억 속에서 하나 둘 떠올리면서 꺼내보았다. 그들은 잘 지낼까? 일은 할만할까? 요즘 그들의 고민은 뭘까? 등 나의 뜨거웠던 순간속으로 깊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가장 뜨거웠던 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기차가 멈추어 서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만큼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호스텔로 향한다.
당신에게 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