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처럼 차가운 그녀가 보고싶다.
아이슬란드에서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타고 폐로 들어오더니 저번처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정말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녀와 약속했던 것이 있었고, 지켜야 하는 약속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약속 하나가 마음속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었고, 가끔씩 파도에 떠밀려와서 파도에 일렁일 때마다 내 마음을 툭. 툭 건드리곤 했다. 이별할 당시의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모두 잠들고 나는 창밖으로 까만 아이슬란드의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거나 혹은 까만 도화지에 하얀 그녀를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지, 그림자가 나로 존재하는지 모르게 지낸 3일이었다. 분명히 갑작스러웠지만 충분히 갑작스럽지 않을만했다.
'손 : 내 이름'
상주란에 내 이름 석자가 있는 것을 보고 느낌이 묘하더라. 이별 중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둔감해져 갔지만, 이별하고난 이후로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지치고 마음의 상처는 둔감해져 갔다. 다음날은 첫날만큼 슬프지 않았고 그다음 날은 더 슬프지 않았다. 외손자라고 해도 이렇게 슬픔이 빠르게 사라질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 들은 "기계 같은 놈"이라는 말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 감성과 감정은 다 거짓이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상했다.
" 익숙함 "
이것이 이토록 무섭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을까? 수년간 알고 지내왔고 감사하고 또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단 며칠 만에 이렇게 슬픔이 빠르게 사라져도 되는가? 이렇게 빨리 부재에 대해 익숙해져도 되는가? 이게 정상인가? 나만 그런가?
온갖 물음이 지나갔다. 지나가는 물음표 사이에서 나는 닭살이 돋으며 무서워지고 있었고 미안한 마음이 밀려들어왔다. 이렇게 빨리 익숙해져서 빨리 적응해서 미안합니다. 3일 동안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지만, 그것도 일시적이었다. 발인을 하는 날이 되어서도 내 가슴은 여전히 강철같이 차가웠다. 엄마의 엄마라는 생각으로 마음속으로 뜨겁게 불타올랐지만 그 열기로는 이토록 차가운 강철을 달굴 수 없었다. 엄마의 엄마를 두 손으로 고이 쥐어 품고는 그녀의 고향으로 향하는 길에 드문드문 떠오르는 추억으로 두 손이 뜨끈해졌다. 따듯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두 손을 꼭 쥐어 땅에 고이 묻어드렸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그분과의 기억으로 슬퍼지고 내 온정을 다해 기릴 것이다.
" 제가 돈 벌면 그때 용돈 드릴게요. "
생전에 나눈 약속을 드디어 지켰다. 살면서 '첫 제사'라는 것을 해보았고, 그 위에 하얀 봉투를 올려놓고 인사를 올렸다. 말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말하면 들릴 것 같아 큰 소리로 속삭였다.
『그랬소. 예전에는 그랬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했다 아입니까. 사랑합니다. 또 사랑합니다.
많이 그리울 거요.』
고마웠던 사람을 아이슬란드의 빙하에 얼려두고 왔다. 내 마음도 내 감정도 그곳에 얼려두고 이토록 차갑고 시린 순간을 맞이했다.
당신도 얼음에 얼려두고 싶은 존재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