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를 읽고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다시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단 한 번도 ‘학교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배워야만 하고, 졸업장이나 자격증 같은 ‘증명서’가 꼭 필요하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실제 능력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학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고, 정해진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길’처럼 여겨진다.
그런 나의 생각을 이반 일리히는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학교가 배움을 수업과 동일시하게 만들며, 졸업장을 능력이나 자격의 상징으로 착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또한 독학하거나 제도권 밖에서 배운 사람은 쉽게 신뢰받지 못하는 구조도 문제 삼는다. 자격증이 없으면 가르칠 수 없고, 배울 수 없다는 인식이 제도적으로 굳어져 있기에 우리 역시 자연스럽게 그 사고방식을 내면화해 버린다.
졸업장이 없어도 사회에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조차 졸업장과 제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나 역시 오랫동안 ‘진짜 배움’은 전문가나 교육자의 수업을 통해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배움과 수업, 학교는 늘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리히는 '배움'은 본질적으로 자율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제도적 틀에 의존하지 않아도 사람은 스스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삶에서 배우는 많은 것들은 학교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부모님, 친구, 이웃, 책, 일상의 경험들 모두가 소중한 배움의 자원이 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육 현실은 입시에 매몰되어 있으며, 학교는 교육이 아니라 ‘상품’처럼 소비되고 있다. 우리는 교육을 ‘사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더 많이 소비할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아간다. 정작 내가 진짜 원하는 삶, 진짜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뒤로 미뤄둔 채, 졸업장과 자격증이라는 껍데기만 좇고 있는 것이다.
《학교 없는 사회》는 문자 그대로 학교를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학교 자체가 아니라, 학교가 유일한 배움의 길이라고 믿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와 제도에 있다. 일리히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생적 제도’를 제시한다. 이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서로의 배움을 도울 수 있도록 연결되는 ‘공부망’을 의미한다.
공생적 제도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여러 나라에서는 의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아이들이 공부망을 통해 스스로 배우는 것이 가능할까? 사람은 마음이 편안하고 생계가 안정되어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 배움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삶의 조건 역시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한다.
‘타이틀 I’라는 미국의 교육정책이 눈에 띄어 따로 찾아보았다. 1965년에 시작된 이 정책은 빈곤 아동이나 저성취 학생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교육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국가적 시도였다. 이후 2001년에 개정된 타이틀 I는 ‘어느 아이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No Child Left Behind)’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과 교사·직원 교육을 강화하며 제도적 지원을 확대했다.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취지였지만, 정작 학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배웠고 무엇을 진정으로 체득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이반 일리히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제도적 노력 역시 교육을 표준화하고 관리하려는 시스템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학교가 학습을 일정한 방식으로 조작하려 하며, 마치 교육이 외부로부터 주어져야만 가능한 것처럼 믿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잠재적 교육과정’이 중요해진다.
잠재적 교육과정이란, 공식적인 커리큘럼 이면에서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습득하는 가치관, 태도, 사회적 규범을 뜻한다. 학교라는 제도는 가시적인 수업 외에도 많은 것을 암묵적으로 가르친다. 문제는 이 과정이 항상 바람직한 것만을 전달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사일지라도 학생들을 비가시적인 학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거나 보호할 수 없다.
일리히는 ‘학생들이 가르침이 있어야만 배울 수 있다고 믿게 된다면 교육은 결국 소비의 대상이 되고 만다’며 경고한다. 이는 배움의 자율성과 내재적 동기를 억압하고, 교육이 곧 ‘상품’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시킨다. 진정한 배움은 제도화된 수업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이고 비형식적인 관계 속에서 더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메시지다.
수업 중심의 교육 제도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점점 자신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학교에 의존하게 된다. 나 또한 그동안 학교 교육에만 기대어 살아오면서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질문해 본 경험이 드물었다. 그러다 문득 작아진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왠지 모를 무력감에 휩싸이곤 한다.
이제는 더 이상 학교 제도에만 기대어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학교화된 사회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배움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사유하며,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지식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배움을 존중하고, 함께 나누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학교는 정말 지식을 의미하는가? 졸업장은 능력을 증명하는가? 아니면 단지 사회가 만들어낸 상품에 불과한가? 그리고 우리는 왜 여전히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까지 학교에 의존하고 있는가? 학교라는 제도에 물음표를 붙이며 우리는 진짜 배움이 무엇인지, 어떤 사회가 더 나은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스스로를 교육의 중심에 다시 세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