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서울살이 회사원, 주말엔 시골살이
2년 전 가을, 나는 시골에 쓰러져 가는 한옥 폐가를 덜컥 샀다. 이건 저질렀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계획했던 일이 아니라서 빚을 내어 잔금을 치렀다.
딱히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TV에 시골집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언젠간 시골집을 고쳐서 살아야지.'하고 막연히 생각하는 날들이 많았다. 어떤 날은 꽤 디테일한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시작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상의 시간이 끝나면 매번 빠르게 현실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런 날들을 무한 반복하다 문득 생각했다. 그 언젠가가 대체 언제쯤일까.
- 마흔? 그럼 5년밖에 안 남았는데.
- 예순? 그건 또 너무 늦는 거 아닌가.
- 그럼 중간인 쉰? 그 쯤이면 회사도 그만뒀으려나?
그때로 가정해봐도 또 그때 안 되는 이유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오히려 더 많이 생겼다. 그리고 든 생각. 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구나.
그게 시작점이 되었다.
시골집에 살고 싶다면, 시골집을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내가 살고 싶은 시골집이 진짜 있는지, 어디 있는지, 돈은 얼마나 드는지부터.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 각 지역의 부동산, 부동산 유튜브를 통해 각지의 시골집을 찾고 발품을 팔았다. 예산이 적어서(적은 게 아니라 없었지만) 집 구경이 아니라 흉가체험도 여러 번 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계약서가 내 손에 있었다. 종잣돈은 없었지만 직장인의 든든한 친구, 마이너스 통장이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순식간이었다.
내가 찾아온 이 집을 동네 사람들은 폐가라고 불렀고, 친구들은 귀신의 집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 집을 수풀사이로라고 이름 지었다. 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 수풀들이 무성했던 풍경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오래 살지 않아 거의 쓰러진 집을 치우고 보수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한 차례 공사가 끝난 후로도 주말마다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찬찬히 고쳐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공간이 되었다.
주말 시골살이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간간히 동네를 산책하고 틈틈이 마당과 텃밭을 돌본다. 쉴 새 없이 자라나는 잡초를 감당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텃밭 가꾸기는 재밌다. 종종 마당에 놀러 오는 동네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웃 어르신들께 시골살이에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배워가며 지낸다. 무더운 날엔 집 앞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기도 한다. 마당과 텃밭의 일이 줄어드는 겨울에는, 아무도 밟지 않는 너른 눈밭을 내가 제일 먼저 밟아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다. 이런 주말 시간들이 쌓이고 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기 전, 주말은 그저 밀린 잠을 해결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주말 내내 쉬었는데도 월요일 아침엔 해결되지 않은 피로감에 괴로웠다. 물론 지금이라고 월요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월요병은 모든 직장인의 불치병 아니던가.) 그렇지만 주말이 평일의 도피처가 아니라 오롯한 쉼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Love yourself란 말이 흔해져서 이런 표현은 부끄럽지만, 솔직히 나는 나와 서먹했다. 서른 중반이 지나도록 나는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일은 열광하고 어떤 일은 회피하고 싶어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집 고치기가 그 계기가 되었다. 쓰러져 가는 폐가가, 내 손을 거쳐 나도 잘 몰랐던 나의 취향과 선호를 담은 공간이 되어가는 과정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 집 고치기는 끝났지만, 집을 돌보고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나와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시골집 고치기와 시골살이를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하고 있다. 인스타그램도 좋지만, 글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브런치,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