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할머니의 텃밭을 추억하며
시골살이에서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텃밭 가꾸기다. 금요일 늦은 밤, 시골집에 도착하면 후다닥 짐을 내려놓고 텃밭부터 확인한다. '줄기가 올라왔을까, 열매가 커졌을까.' 하며 컴컴한 뒷마당에 쪼그려 앉아 이파리 한 장 한 장을 관찰한다. 그 시간이 좋다. 한 주를 잘 마무리했다는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할머니도 텃밭이 있었다. 집과 집 사이의 아주 좁은 (심지어 남의) 땅이었지만, 할머니는 눈만 뜨면 그곳으로 향하셨다. 허리가 아파 죽겠다면서도 매일 밭으로 향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시간과 노력이면 사 먹는 게 훨씬 쌀 거라는 뾰족한 말도 보태었던 것 같다. 가족들에게 직접 키운 채소를 먹인다는 보람이 우선했겠지만, 어찌 보면 그 시간이 할머니만의 평온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늘나라의 할머니에게 물어볼 수 없으니 혼자 추측할 뿐이지만, 2년 차 텃밭러로서 아마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 햇빛, 바람 그리고 덜어내기
처음 시골살이를 시작한 후 맞은 달이 5월이었다. 무엇을 심어도 알아서 잘 자라는 계절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 텃밭의 작물들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대로였다. 한두번의 주말이 지나갔고 나는 '뭐가 잘못 됐나, 뿌리가 썩었나.'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차례 큰 비가 지나가고나니 거짓말처럼 훌쩍 자랐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렇게 자라난 줄기 하나, 잎 하나도 너무 소중해서 자라는 대로 그대로 두고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많지도 토마토와 상추, 고추들이 한 데 얽히고설켜 순식간에 밀림이 되었다. 당연히 열매도 제대로 맺지 못했다. 그리고 너른 밭에 작물들을 왜 이렇게 틈도 없이 촘촘하게 심었는지... 사이사이의 작은 가지와 잎들은 볕도 못 보고 바람도 들지 않아 결국 노랗게 시들어 말랐다.
첫 계절에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제는 알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작물들의 성장 속도는 모두 같지도, 일정하지도 않다. 훌쩍 자라기 위해서는 가끔 거센 비바람이 필요하다. 작물들이 더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간격, 적당한 때에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저 답고 튼실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사실 시골집을 찾아다닐 즈음 나는, 일과 사람관계에 지쳐 무기력한 상태였다.
나는 내가 하는 일과 그 사이의 관계들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덜 힘든 것은 아니다. 그 힘듦을 적당한 때에 건강한 방법으로 풀었어야 했는데 그냥 안으로 쌓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단 기분이 들었다. 방전이었다. (이 무렵 브런치의 퇴사 관련 글을 모조리 읽었던 것 같다.) 이제 보니 시골집 고치기로 다짐한 것은 로망의 실현이라기보다 도피에 가까웠다.
도피든 무엇이든 나는 주말마다 시골집에 갔다. 그리고 주말만큼은 마감시간과 할 일 목록이 없는 시간을 누렸다. 주말마다 의무적으로 잡던 약속이나 모임도 과감히 패스했다. 그저 무기력에 빠진 나를 충전하려고 애썼다.
그러고 보면 텃밭의 작물들에게 필요했던 모든 것들이 내게도 필요했다. 때로는 시간이 필요했고, 때로는 온갖 관계에서 멀어진 오롯한 휴식이 필요했다. 과감한 가지치기처럼 덜어내기가 필요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걸 뙤약볕 아래 텃밭에서 알게 되었다.
내가 주말마다 텃밭에서 돌보는 것은 제철 채소만이 아니다. 땅에 뿌리내린 작물들처럼 일상 속에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 나는 여전히 세상 속 쪼랩이라 수시로 배터리 잔량이 낮아지지만, 괜찮다. 나에게는 매주 돌아오는 주말과 도망가지 않을 텃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