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가 생겼습니다
내가 책장을 팔락, 하고 소리 내어 넘기자 곤한 잠에 빠져있던 소망이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잠에서 막 튕겨져 나온 얼얼한 표정으로. 나는 미안해서 괜히 소망이의 엉덩이를 토닥토닥한다. 소망이는 금세 다시 평안을 찾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거 마냥 끊겨버린 잠을 다시 이어 잔다. 소망이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깜짝깜짝 놀라고, 또 순식간에 평온을 찾는다. 나는 고양이의 이런 점이 신기하고 귀엽다.
소망이는 태어난 지 2년 4개월이 된 턱시도 고양이다. 매번 열심히 그루밍을 하긴 하는데, 사실 그리 깔끔한 편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소망이를 털털한 고양이,라고 소개한다. 무엇보다 소망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논다. 성별은 수컷인데, 전에 살던 집에서 암컷인 줄 알고 소망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나와 함께 산지는 이제 만 2년이 되었다.
소망이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가을이다. 시골집을 계약하고 난 다음 달, 시골살이 사전 체험(?)도 할 겸 지인의 시골집에 놀러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디서 조그만 솜뭉치 같은 게 뽀르르 달려왔다. 장터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팔고 있던 고양이를 5천 원 주고 데려온 거라고 했다. 고양이는 내 청바지에 자기 발톱을 콱 박아 넣고 클라이밍 하듯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허벅지에 매달려서는, 위잉위잉 기계소리 같은 걸 냈다. 나중에야 그게 골골송이라는 걸 알았다. 고양이가 기분 아주 좋거나 상대와 친해지고 싶을 때 내는 소리다. 나는 허벅지에 매미처럼 매달린 솜뭉치를 떼어내고 바닥에 앉았다. 고양이는 금방 내 무릎에 올라와 앉았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더니 다시 기계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태평하게 잠든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라기보단 쥐에 가까운 비주얼이 아닐까 생각했다. 손바닥만 한 체구에 겨우 귤 하나 만한 머리통. 그 작은 데에 눈코입도 있고 쫑긋한 귀까지 있는 것도, 눈 위와 입 옆에 제 얼굴보다 긴 수염이 있는 것도 신기했다. 자는 얼굴이 귀엽긴 한데-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서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 얼굴을 콱 할퀼까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소망이는 병원에서 피부병 진단을 받았다. 코와 입 주변에 거뭇거뭇한 딱지들이 붙어 있어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곰팡이성 피부병(링웜)에 걸렸다는 거였다. 매일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야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약샴푸로 목욕을 해야 낫는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 방문이 계속 필요하다고 했다. 지인의 시골집 주변에는 동물병원이 없고, 고양이에게 매일 소독이나 약욕을 해줄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고민 끝에 내가 소망이와 잠시 함께 지내기로 했다.
나는 어릴 적 짜몽이라는 강아지를 입양했다가 평생 함께하지 못하고 파양 한 적이 있다. 늘 나를 쫓던 짜몽이의 까만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그날 짜몽이는 내가 자신을 버린 것을 바로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 돌이킬 수 없는 그 일은, 끝없는 미안함과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후에 나는 이 일을 입 밖에 낸 적이 없고 다시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할 수 없었다. 나는 한 생명을 책임지기에 미성숙하고 책임감이 너무 부족했다.
그렇지만 소망이와 함께 지내기로 선뜻 결정할 수 있었던 건, 한두 달이었기 때문이다. 곰팡이성 피부병은 면역력이 약한 어린 고양이들에게 쉽게 발병하는 병이고, 한두 달이면 깨끗하게 낫는다고 했다. 피부병이 나을 때까지- 잠시 같이 사는 룸메이트가 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집에는 작은 고양이에게 내어줄 여분의 공간이 있었으니까. 고양이는 다 나으면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갈 거니까.
그렇게 소망이가 우리집에 왔다.
나는 고양이를 잘 먹이고, 소독하고, 씻기고, 놀아줬다. 그런데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피부병의 원인은 곰팡이균인데, 소망이가 접촉하는 물건(특히 패브릭류)을 통해 계속 옮겨 다닐 가능성이 높았다. 사람에게도 옮길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소망이 물건을 모두 소독하고, 패브릭류는 가능하면 자주 세탁했다. 이틀에 한 번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샴푸로 목욕도 했다. 여유롭던 아침시간은 사라졌고, 퇴근하면 곧장 집에 달려와야 했다.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초조함에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래도 퇴근은 전에 없이 좋았다. 내가 문 밖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띠띠, 띠띠띠띠 누르면 소망이는 항상 마중을 나왔다. 잠에서 막 깬 부스스한 얼굴로 빼먹지 않고 마중을 나왔다. 앞으로 몸을 주욱 늘렸다가 다시 뒤로 주욱 늘리는 고양이 기지개를 켜면서, 마치 요가를 하듯이. 그러고 보니 요가 자세 중 고양이 자세는 정말 고양이의 자세였다.
잠이 오지 않는 어떤 밤에는 같이 넷플릭스를 봐주기도 하고, 기분이 별로인 어떤 밤에는 (항상 먼저 잠들어 버리기는 했지만) 술친구도 되어 주었다. 소망이는 꽤 좋은 룸메이트였다.
때때로 소망이가 우리집에 계속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마다 짜몽이의 까만 눈동자가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나는 시골집을 막 계약한 상태였고 주말마다 편도 2시간 반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가 매주 차를 타고 이동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소망이와 함께 지내며 알게 된 사실은 고양이가 소리에 무척 예민한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작은 소리에도 움찔움찔 놀라는 고양이가 소음으로 가득한 차를 타고 매주 오도이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소망이의 원래 가족이 소망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주가 지나자 소망이의 피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동전 모양으로 뭉텅뭉텅 털이 빠져 분홍색 속살이 다 보이던 곳에, 새 털이 빼곡히 나고 있었다. 소망이가 다시 돌아가야 할 때였다.
소망이를 데려다주던 날, 나는 운전을 하고 가면서 내내 엉엉 울었다. 뭔가가 자꾸 터져 나와 끄윽끄윽 울었고, 소망이는 그 소리에 계속 야옹거렸다. 그때 나는 소망이와 헤어지는 게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빈 집에 돌아왔을 때- 그 눈물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한 편으론 소망이가 얼른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였다. 내가 돌봐야 하는 다른 생명이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은, 내 마음을 계속 짓눌렀다. 나 때문에 잘못될까봐, 더 아플까봐, 무슨 일이 생길까봐. 그러다 막상 소망이가 떠나는 날이 오니까, 그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그리고 너무 다행스러워서, 또 홀가분해서- 울음이 터졌던 거였다.
소망이가 가고, 나는 도어락을 누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 몸 하나 추스르고 바로 침대에 누워도 되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어 안도했다. 가끔 집 안 곳곳에 남아있는 소망이의 흔적에 눈물을 찔끔거리기는 했지만 대체로 평안한 날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소망이를 만나러 갔다.
소망이는 처음 만나던 날처럼 뽀르르 내게 달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소망이를 안아 올렸다. 귀와 손, 뒤통수, 등을 따라 피부병이 다시 잔뜩 번져 있었다. 소망이는 반갑다고 그릉그릉 거리며 다시 내 무릎에서 잠을 청했다. 그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나는 다시 소망이를 우리집에 데려왔다.
나는 전보다 더 열심히 소독하고 꼼꼼히 약도 발라주었다. 약욕도 빼먹지 않았고, 곰팡이성 피부병에 좋다는 백신도 맞혔다. 피부염 부분을 밀어주는 것이 좋다기에 미용가위도 사고, 전용 이발기도 들였다. 그렇지만 그 후로 다시 넉 달이 넘도록 소망이의 피부병은 낫지 않았다. 그래도 소망이는 쑥쑥 자랐다.
어느 날 나는 지인에게 소망이와 계속 함께 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더 이상 분홍빛 속살이 보이지 않고, 빼곡히 새 털이 난지 이미 꽤 지난 어느 날에 말이다. 소망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었다. 이제 와 내 멋대로 하는 생각이지만, 자기가 금방 다 나으면 내가 또다시 돌려보낼까 봐 그렇게 지독하게 오래 피부병을 앓았던 게 아닐까.
소망이는 매주 나와 함께 오도이촌을 한다. 내 깊고 오랜 걱정과 달리 소망이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에 잘 적응해주었다. 차가 막혀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날에는, 야옹거리며 불만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자기 자리에서 긴 잠을 잔다.
전에 1박 2일 간 소망이를 두고 여행에 다녀온 적이 있다. 친구가 집에 들러 밥과 물을 새로 주고, 화장실도 치워줬지만- 소망이는 내내 혼자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자 울음을 토해 내듯이 전에 듣지 못한 목소리로 한참을 울었다. 그날 이후로 서로가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함께 시골집을 오가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고양이가 가진 특성상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늘 소망이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소망이가 아프다면, 나는 아마 그 이유를 오도이촌을 하게 한 나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골집에서 맞는 토요일 아침.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소망이 밥그릇을 살피는 일이다. 요즘은 뱃살이 아주 넉넉해진 소망이의 체중조절을 위해 두 가지 사료를 섞어주고 있다. 소망이는 아주 기가 막히게 자기가 안 좋아하는 사료만 골라서 남겨둔다. 신통방통이다. 다 먹지 않아도 자꾸 좋아하는 사료로 다시 채워주니까 꾀가 났나 보다. 나는 다 먹으면 새로 줄 거야, 하면서 밥그릇을 가리킨다.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마지못해 남은 (소망이 기준 맛없는) 사료를 먹기 시작한다. 나는 사료를 까드득 까드득 먹는 소망이 옆에 자리 잡고 앉아서 통실통실한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준다. 소망이는 그릉그릉 소리를 내면서 밥을 먹는다.
나는 소망이가 밥 먹는 소리를 좋아한다. 사료랑 밥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소망이가 사료를 오독오독 씹는 소리. 소망이는 마음이 편안해지면 밥을 먹고,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셀 수 없이 많지는 않겠지만, 가능하면 오래도록 이런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