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로 첫 책을 냈습니다

출간 반년 후에 쓰는 출간후기

by 수풀사이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안에서 맴돌던 이 말을 솔직하게 꺼내 놓고, 무언가 쓰기 시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일이, 제게는 꼭 연예인이 되고 싶다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누가 봐도 할 수 없는 일을 마냥 꿈꾸는 철없는 사람처럼 여겨질까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티내지 못했지만 학창시절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어요. 한두 번 백일장에 나간 적은 있는데, 결과가 참가에 의의를 두게 만들었지요. 당시 백일장 담당이자 담임이셨던 선생님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왜 미리가 쓴 글은 10대 소녀가 쓴 것 같지 않고 30대 여자가 쓴 것 같지?"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30대가 되었을 때, 무언가 써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30대 여자가 30대 여자처럼 쓴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마음과 달리, 글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회사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다, 어디에 내 놓기엔 글재주가 모자라다, 읽어줄 이도 딱히 없다. 이런 핑계가 수십 개는 있었고, 이런 핑계들은 아무 것도 쓰지 않는 '나'를 당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저와는 달리, 삶을 글로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동료 A는 최근 엄마가 된 일상을 브런치에 꾸준히 연재하고 있었고, 동료 B는 달리기를 하며 떠오른 생각들을 브런치에 차근히 쌓고 있었죠. A, B의 글은 좋았습니다. 유려하고 멋진 문장이어서가 아니라 꼭 A, B만 쓸 수 있는 글이어서 좋았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고 나는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단순했어요. 수십, 수백 개의 핑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겠죠.


그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에 속하고 싶었으니까요.


브런치 사이트에 접속했습니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글을 쓰려면 작가 신청을 통과해야하고, 작가신청을 하려면 두어 개의 글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무엇에 대해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 하얀 화면 속에 첫 문장을 적어 넣었습니다. 멋진 글을 쓰려고 애쓰지 말고 '나의 일상을, 나의 언어로 충실히 기록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게다가 작가 신청에 떨어지면 아무도 보지 못할 글이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 여름 날 새벽. 저는 두 개의 글을 쓰고 작가신청을 눌렀습니다. 이틀 뒤,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떨어지면 없던 일로 해야지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작가 승인 메일을 받고나자, 다음에는 또 뭘 써야 하나 하는 고민이 시작되더군요. 이제 독자가 있는 글쓰기라고 생각하니 한 문장 한 문장이 엊그제와 달리 무겁더라고요. 망설이는 사이, 아무 것도 쓰지 못하고 이틀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휴머니스트 출판사 OOO입니다.


한 출판사의 출간 제안 메일이었습니다. (부끄러워 망설이다가) 브런치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그 글을 편집자님께서 보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 책의 시작이었고, 이로부터 딱 1년 뒤인 2022년 8월. 이 출판사에서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첫 책을 출간했습니다.





출간 후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이제야 출간후기를 적는 이유는, 이제야 잔잔한 마음으로 책과 함께한 여정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출간후기는 책이 나온 주간에 적는 것이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뒤늦게 아쉬운 마음을 가져봅니다. 사실 쓰려고 여러 번 마음을 먹긴 했었는데, 이상하게 써지질 않았어요. 브런치 작가 신청을 단번에 통과하고, 브런치에 글을 올린지 이틀 만에 출판사로부터 출간제안을 받는 것. 이것은 쉬이 오지 않는 운이고 우연인데 이를 자랑하는 것처럼 여겨질까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운과 우연을 붙든 것은 저라고요. 여름 날 새벽,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첫 문장을 적고, 작가 신청을 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내 글을 보러 오세요.'라고 인스타그램에 올린 건- 저니까요. 작은 시작을 실행한 제 용기가, 일상을 부유하던 우연과 운을 삶 속으로 붙잡아 온 것이라고요.



지금 쓰는 출간후기는 저를 위한 것입니다. 시골살이에 대한 글 말고 이제 새로운 것을 쓰고 싶은데, 예전보다 더 많은 핑계들이 저를 붙들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쓰기 위해서 이 글을 씁니다. 오늘 이 글이 어떤 일의 시작이었다, 고 말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크리스티앙 보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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