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한 것은 세 살부터라고 한다. 당연히 나는 그날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 이후 오랫동안 할머니는 나의 보호자로 살았다는 것이다. 이십여 년이 지나 내가 경기도 외곽에 작은 월세방을 얻었을 때, 우리는 '우리 집'이 아니라 '각자의 집'에 살게 되었다. 그날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는 많이 늙고 약해졌지만, 나는 할머니의 보호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눈물은 났지만 떠나는 발걸음은 단호했다.
그래도 휴일에는 종종 할머니집을 찾았다. 우리 집이었다가 할머니집이 된 곳. 할머니는 매번 누우라고, 한숨 자고 가라고 했다. 그날도 두툼한 이불로 덮어두었던 아랫목을 내보이며, 이불 한 채를 새로 꺼내왔다. 나는 일이 있다며 도망치듯 신발을 챙겨 신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가방 속 돈봉투를 매만졌다. 이제 나도 돈 버는 손녀가 되었으니 가끔은 할머니께 용돈도 드려야지, 하며 몇 장의 지폐를 넣은 봉투였다. 가방 속에서 봉투 끝을 쥐는 순간, 다음 달 카드값이 셈해졌다. 잠깐 사이, 마음속에 장렬한 전투가 펼쳐졌다. 그리고 결국 봉투는 가방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카드 값의 승리였다.
이제 가끔 보는 할머니가 애틋해도, 어릴 땐 할머니가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알 거 아는 나이부터는 할머니가 짜증 났다. 친구네 집에는 다정한 엄마들이 있었다. 재밌게 놀다 가라며 과일도 깎아주고 간식도 내어 주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과일은커녕 왜 떼로 몰려와서 집을 어지르냐는 할머니의 욕만 한 바가지씩 얻어먹고 돌아갔다. 나는 친구들이 가고 나면 할머니와 싸웠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언제나 나의 확실한 보호자였다. 여덟 살 때쯤이었나. 어느 집 개에게 물려 울며 집에 들어간 날이 있다. 내가 어느 집 개라고 입을 떼자마자 할머니는 그 집에 쫓아갔다. 마당에서 고함을 치며 욕을 한바탕 하고는, 나를 문 개를 붙들어 털을 한 움큼 잘랐다. 그리고는 개에게 물린 내 팔을 억시게 붙잡고 개털을 붙여주었다. 그래야 낫는다고. 또 언제는 내가 학교 가기 싫다며 마당에서 울고 있었다. 나를 본 할머니가 '이노무 지지배가!' 하며 연탄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왔다. 할머니를 보고 놀라 눈물을 그쳤다. 그리고 울음 섞인 목소리를 쥐어짜 말했다. 준비물이 부레옥잠인데 지금 어떻게 사느냐고. 안 사가면 선생님한테 혼날 거라고. 준비물 안 사 온 애는 나 밖에 없을 거라고. 할머니는 우는 내 손을 채어 잡고 동네 수족관으로 갔다. 문도 열지 않았었는데, 할머니는 가게 셧터를 흔들어 주인을 불러냈다. 기어코 내 손에 부레옥잠을 들려 학교로 보냈다.
원피스를 입은 귀여운 손녀들이 ‘할머니이!’ 하면서 무릎에 앉으면, 할머니들이 ‘우리 강아지, 우리 손녀’ 그러는 건 드라마 속에만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할머니와 함께 보낸 많은 시간과 세월 속에서 나는 할머니가 무섭고, 미웠다. 가끔 철든 생각을 하는 날에는 고맙고, 미안했다. 그리고 의지했다. 가끔은 할머니 이불속에 슬쩍 들어가 삐죽삐죽 차가운 내 발을 할머니 발 위에 얹었다. 그럼 할머니는 ‘차 디지것네.’ 하면서도 따뜻한 발을 내 발 위에 얹어 덥혀 주었다. 그리고 내가 잠들면(잠든 척하면) 엄마 욕, 아부지 욕을 차지게 하면서 두껍고 거친 손으로 내 배를 쓸어주었다.
내가 대학생이 된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졌다. 몇 달 후 할머니는 잘 회복해 퇴원하셨지만, 난 그 후로 할머니가 갑자기 죽을까 봐 무서웠다. 새벽녘 할머니의 시끄러운 코 고는 소리가 갑자기 멈출 때,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 할머니방 앞에 서 있었다. 언제든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 할머니를 흔들어 깨울 태세로 준비하고 섰다가, 할머니가 다시 ‘푸르르~’ 하면서 긴 숨을 내쉬면 안심하고 내 방으로 왔다. 그런 새벽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수없이 연습했다. 그리고 상상 속으로는 여러 번의 장례식도 치러봤다. 그리고 몇 년 뒤, 나는 할머니의 진짜 장례식장에 있었다. 나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의식도 없는 할머니에게 뒤늦게 달려와 인사를 했다. 거듭되는 면회시간마다 점점 더 차가워지는 할머니의 육체에 겨우겨우.
슬퍼할 새도 없이 장례절차가 시작됐고, 할머니의 마지막 새 옷인 수의를 챙기러 할머니집에 갔다. 식탁 위에 물에 만 밥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숟가락이 꽂힌 채로. 김치 하나 없이. 일순간 쓰러진 할머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목 놓아 울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진짜' 장례를 치를 땐 울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상상 속 장례식에서는 알지 못했다. 장롱 한 켠의 수의를 챙겼다. 서랍에는 새 내의, 새 양말이 잔뜩이다. 아끼지 말고 뜯어서 입으라고 잔소릴 하면, 입는 척 모양새만 취하고 결국 다시 넣어두기를 반복하던 것들. 교회가방이 지퍼가 열린 채 주인을 기다린다. 성경책 사이에 다음 주 헌금으로 준비해 둔 지폐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잠깐 누웠다 가라는 할머니 말이, 오늘 밤 자고 가라는 말인 걸 모르지 않았는데 왜 나는 끝내 모른 체했을까. 술기운에 '오늘은 내가 살게' 소리는 잘도 하면서, 그 봉투를 꺼낼 때는 무슨 셈을 그렇게 많이 했을까. 할머니가 부탁한 수많은 일에 나는 왜 항상 '다음에'라고 답했을까.
나와 할머니의 사이에 다음이 없었던 적이 없다.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거기 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다음에’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날 할머니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제 가라는 듯 훠이훠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서 있는 5층 베란다를 바라보며 가방 속에 봉투를 몇 번 더 꼼지락거렸던 것 같다.
다시 아파트 계단을 뛰어 올라가, 할머니가 데워놓은 따뜻한 아랫목에 눕고 싶다. 나서는 길에는 할머니의 자주색 조끼 주머니에, 두껍지 않은 봉투를 억지로 넣어 주고 싶다. 비록 그게 꿈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