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느린 택배도 괜찮은가요?

by 수풀사이로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리키와 그 가족의 일상을 보여준다.


어느 날 택배 일을 시작하게 리키. 그의 고용주는 말했다. 꼭 달성해야 하는 실적 같은 건 없고, 오직 배송기준만 지키면 된다고.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고용된 기사가 아니라, 개인사업자 가맹주라고. 혼자 일하면서 자기 사업을 하고 싶던 그에게 꼭 맞는 일 같았다.


언뜻 달콤한 말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리키는 사업자로서의 권리도, 근로자로서의 권리도 찾을 수 없는 영역으로 끌어내려졌다. 그는 하루 14시간씩 주 6일을 일했다. 주당 84시간을 택배를 들고 달리지만, 단 2분도 오롯이 쉴 수 없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배송추적 기계가 그를 찾으며 울려댔다.


리키는 사람답게 먹고 싸는 일을 가장 먼저 포기했다.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가장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끼니를 거르고 화장실 대신 페트병을 사용했다. 그러나 곧 그는 알게 되었다. 더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는 걸. 가족이 힘들고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리키는 배송을 나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 대신 일할 대체기사 비용을 지불하거나 벌금과 벌점을 물어야 하니까. 분명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성실히 하고 있는데- 리키와 그의 가족은 점점 더 많은 빚을 지게 됐다. 그래도 그는 일터로 나섰다. 더 열심히 일하는 것 말고 다른 도리가 없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리키는 배달을 하다 강도를 당한다. 크게 다치고 장비를 잃었다. 그는 또 참담한 심정이 되었지만, 고용주는 전화로 벌금 액수를 늘어놓을 뿐이었다.


영화는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일터로 나가는 리키를 비추며 끝이 난다. 운전대를 잡고 흐느끼는 리키의 얼굴에 나의 얼굴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겹쳐 보았다. 울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의 원제가 당연히 'Sorry, Ricky.' 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Sorry, we missed you.'였다. 배송지에 받는 이가 부재할 때, 택배기사가 남기는 메시지. 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군요. 그로부터가 아니라 우리로부터 시작되었어야 할 메시지.




이커머스 업계에서 10여 년을 일하며, 나는 늘 택배를 일상적이면서 머리 아픈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내가 파는 모든 물건은 택배서비스를 통해야 고객의 손에 도착하는데도 말이다. 택배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파업하는 일, 명절 전후 물량이 급증해 배송이 늦어지는 일. 그런 일들에 찌푸렸다. 택배는 사람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데, 나는 그 손 위에 물건과 그 뒤에 숫자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활 보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온라인 쇼핑을 했다. 이번에는 고객이 되어서. 로켓처럼 빨리 도착한다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혹시 내가 누군가를 흐느끼는 리키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손가락이 멈춰지지는 않았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리키의 말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통속적인 이 한 마디가 마음에 남는 이유는 뭘까. 여전히 나는 빠른 배송과 저렴한 배송비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MD로서도, 고객으로서도 느리고 비싼 택배를 수용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영화가, 이런 글이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오늘 받은 택배가 아니라 택배를 가져다준 '사람'을 떠올리게 될 테니까. 이 영화의 감독인 켄 로치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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