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라는 것은 참 야속하다. 익숙해지는 것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쁜 것은 익숙해지다 못해 습관이 되어 내 일상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마는데, 좋은 것은 익숙해지니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버린다.
한 때 내 장점으로 꾸준함을 꼽았었는데 이젠 도저히 그렇게 말 할 자신이 없다. 예전의 좋은 습관이라고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일기를 쓰던 습관, 운동을 하던 습관, 장을 보고 식단을 관리하던 습관 등은 모조리 사라져버렀다. 그저 귀찮음에 뒹굴면서 쓰기는 커녕 읽는 양도 줄어가고 있다. 작년엔 한 주에 헬스장을 6일씩 갔지만 올 해 들어서는 한 주에 한 번 가면 다행이다. 7월부터 시작한 러닝은 시작했을 땐 너무 재밌고 평생 취미로 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난 달 부터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하고 있다. 간신히 하루 시간을 내서 뛰고 왔는데 오랜만에 뛰어서인지 무릎 인대가 부어서 며칠 고생하기도 했다. 3년 째 자취를 하면서 배달음식을 한 번도 먹지 않고 매 끼니를 만들어 먹은 것이 하나의 자랑이었는데, 이젠 라면이니 볶음밥이니 매일 똑같은 음식으로 연명하느라 바쁘다.
그렇게 좋은 습관이 없어질거면 나쁜 습관도 같이 없어지는게 공평할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좋은 습관이 사라진 자리를 나쁜 습관이 모조리 차지해버렸다. 근데 왜 반대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나쁜 습관이 자연스럽게 없어지면서 좋은 습관이 그 자리를 차지해주면 참 좋겠는데 원망스럽게도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한때 내 장점이었던 꾸준함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습관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꾸준함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미루기가 아주 일상이 되어버렸다. 운동도 미루고, 청소도 미루고, 책상정리도 미루고, 빨래는 수건이 모자라기 직전에 간신히 한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빨리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위주로 식단을 짜고 장을 본다. 장도 이젠 집에서 어플로 보고 배달받는다.
익숙하지 않았을 땐 뭘 하든 다 새롭고 재미있었다. 매 주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귀찮지 않았고 남은 식재료를 두고 뭘 더 사올지 생각하고, 메뉴를 계획하는 것이 재밌었다. 의도한 맛이 나려면 무엇을 더 넣어야 하는지, 재료의 익힘 정도를 조절하기 위해 재료를 손질하고 불 조절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하나 다 신경을 썼다. 일기를 꾸준히 쓸 때는 내 생각을 다시 되짚고 그 안에 내 모습을 돌이키는 것이 좋았다. 헬스장에 다니는 것도 pt를 받으며 자세를 배우고 스스로 몸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재밌었다. 주변에서 몸이 좋아졌다는 칭찬을 들으며 신나하는 것은 덤이었다.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익숙해지니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데나 넣어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식재료로 냉동실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매주 같은 운동만 하다보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며칠 바쁘다고 운동을 미루다보면 다시 운동을 가기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이쯤 되자 나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별로 꾸준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꾸준했지만 더 이상 꾸준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나보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어려서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많이 쓰곤 했는데, 그런 모습을 스스로 꾸준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꾸준함이 어디로 도망갔냐고 불평해 봐야 소용 없을테다.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어쩌면 스스로 꾸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자아상이 확실하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찾고 내 성향에 맞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게 해준다. 반면에 자아상에 대한 확신이 행동에 제약을 걸어 매 순간에 충실하게 사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꾸준함이 내가 가진 장점이라 믿는다면 특정 분야에서 더 특출난 능력을 갖추게 될지 모른다. 한 분야에 대한 꾸준함보다 다양한 경험을 추구한다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안목을 기를 수 있을수도 있다. 무엇이 더 좋을까? 정해진 답은 없을 것이다. 그냥 세상을 살아가는 또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꾸준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무기력은 게으름과는 다른 문제다. 새로운 관심사를 찾든, 일상을 좀 더 새롭게 바라보든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트에 가서 귀찮다는 이유로 잘 사지 않았던 식재료를 집어와야겠다. 미뤘던 러닝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날이 추워져 러닝을 미루기보다, 날씨가 달라졌으니 새로운 기분을 느끼기 위해 러닝을 한다고 생각해보려 한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