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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Jan 30. 2022

권력의 망에 갇힌 고래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2016, 여행  방문했던 오키나와 북부에는 세계에서  번째로 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츄라우미 수족관' 있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변변한 수족관을 가본 적이 없던터라, 사람들이 많이들 방문한다기에 별다른 생각없이 수족관을,   인기가 많다는 '돌고래 ' 관람하러 갔다.


츄라우미 수족관. 출처 구글


풀장에 바짝 붙어 앉은 관람객은 대부분 어린아이들과 그 부모였다. 어린아이만큼의 호기심이 없었던 나는 야외 풀장 계단 끄트머리에 앉아 돌고래가 등장하기를 성의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난 미끈한 몸체의 돌고래는 휘슬 소리에 맞춰 무언가를 뛰어넘고, 싱크로나이즈를 선보였다.


출처 구글. 처음으로 본 돌고래 쇼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해진 것도 잠시, 까닭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불쾌함이 치밀었다.

'아니, 저만큼 의사소통이 되고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었단 말이야? 쟤네 다 어디서 잡아와서 가둬놓고 훈련시키는 거 아니야?'

친밀해보이는 훈련사와 이런 저런 묘기를 선보이는 돌고래. 그들의 사이를, 마음을  없었지만, 왠지  돌고래를 보며 웃고 박수치기는 싫었다. 공연이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공연장을 빠져나왔고, 왠지 모를 불쾌함은  잊혀졌다.



순간적인 불쾌함은 금방 사라졌지만,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영특한 동물에 대한 인상은 깊었나보다. 돌고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던 어느 ,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고래 '벨루가' 폐사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수족관에 갇혀 사는 벨루가들이 병들어 연달아 죽고 있다는 것이었다.


추가적인 기사에 따르면, 지능이 높은 고래류는 스트레스로 인해 유리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자해행동을 하기도 한다. 본래 북극해를 누비는,  몸길이만 3m가 넘는 흰고래 벨루가는 수심 1000m이상까지 잠수하기도 한다는데, 7m짜리 수조에 가두어놓았으니 놀랄 일도 아니였다.

("롯데월드에 홀로 갇힌 벨루가는 결국 자폐증세를 보였다" 동물보호단체들 방류 촉구 기자회견- 김기범 기자)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6271200001



이쯤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지만 갇혀 있다는 걸 자각하는 동물 같은데 이렇게까지 괴롭게 하다니. 그리고 궁금해졌다. 고래를 놓아주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증에 먹어치우듯 읽은 책 '잘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불법포획되어 돌고래쇼에 섰던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이 바다로 돌아가는 과정을 리듯 자세하게 보여준다.


사진 출처: yes24


작가는 책을 통해 돌고래가 불법포획되어 인간의 노리개로 변해가는 지난한 과거와 야생방류까지의 고군분투보여준다. 여러 내용이 담겨있었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권력의 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래들의 고통이었다.



돌고래 종류를 분간할 수 있는 특징이 몇 번이나 책에서 언급되었음에도 기억을 못할 정도로 동물에는 문외한이지만, 제 3자에 가까운 입장에서 봤을 때,  돌고래쇼에 동원되고 수족관에 전시되는 고래들을 관통하는 권력 크게  가지로 누고 싶다.


첫 번째는, 인간에게서 비롯되어 고래에게 가해지는 권력이다.


야생에서 살고 있던 돌고래는 음파를   돌아오는 반송파를 통해 지형을 인식하고 물체를 파악한다. 그러나 수족관에 잡혀온 돌고래는 생애 가장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게 되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각기관의 사용을 멈춰야 한다. 음파를 쏘면  미터 가지 못하고 콘크리트 벽으로 튕겨나오기 때문에, 근육을 퇴화시켜야 한다.


이후 인간은 비싼 값을 치룬 돌고래가 제값을   있도록 쇼를 가르친다. 야생의 (wild body)에서 수족관의 (captive body)으로, 그리고 돌고래쇼의 (show body)으로 인간은 돌고래의 몸을 개조시킨다. (Nam, 2014)


돌고래를 인간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먹이 지배'가 이루어진다. 활어는 비싸기 때문에, 잡혀온 돌고래는 값싸고 보관이 편한, 죽은 냉동 생선을 먹는 법을 배운다. 배고플 때까지 돌고래를 굶긴 뒤 죽은 생선을 먹는 법을 익히게 한다.

그런 후에 사육사들은 '긍정적 강화'를 통해 쇼 묘기를 가르친다. 돌고래는 묘기 연습이나 공연 중에만 보상으로 생선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수족관에는 "배고플수록 많이 배운다"는 법칙이 통용된다.


돌고래 훈련사들은 돌고래들이 때때로 저항한다고 말한다. 쇼 중에는 어쨌든 먹이를 준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에 일부러 묘기를 부리지 않는 이른바 '시위'를 하기도 하고, 특정 훈련사에게 토라져 말을 듣지 않기도 한다.


책에 따르면, 미국의 생태사학자 제이슨 라이벌은 '동물들도 저항한다'고 말하며, 인간이 동물의 노동을 통제하는 데 크게 세 가지 방식을 이용한다고 주장한다.

1. 보살핌. 좋은 환경에서 좋은 먹이를 제공하고 질병을 치료해준다.

2. 압제. 동물을 철제 울타리, 유리벽에 가두고, 코뚜레를 꿰고 거세를 하고 발톱을 뽑는다.

3. 협상. 밀고 당기기. 최고의 노동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은 동물을 으르고 달래야 한다.

(237쪽)


인간이 동물을, 특히 고래를 길들이기 위해 행하는 '먹이 지배' '긍정적 강화' 과정을 쫓아가다 보면 인간의 주도면밀함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낙담하게 된다.


인간으로 치면 철창 뒤에 가둬 버리는 '자유형' 가한 셈인데,이렇다 할 거창한 변명도 없이 단지 오락거리로 만들기 위해 다른 생물을 이렇게나 치밀하게 복속시킬 필요가 있는지의 의문은 책을 읽어도 해소되지 못하고 배가되기만 한다.


생존을 위해 타협한 결단을 정말 주체적인 선택이라   있을까? 위에서 언급된 통제의 법칙이 비단 동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하는 생각도 든다. 외부의 어떤 조건들로 인해 한계가 부여되고, 주어진 규율과 훈련에 몸을 맞추고, 포기하고 타협하면서 얻는 순간순간의 작은 보상들. 고래들이 겪는 삶의 험난한 과정이 인간사회 속의 고통과 유사한 것 같아서 더 마음이 간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돌고래에게 가해지는 두 번째 권력은 돌고래를 둘러싼 인간들 사이의 권력 다툼이다.

불법포획된 남방큰돌고래(제돌이) 야생방사하는 과정에서 표명한 서울시의 입장은 단순히 가엾은 돌고래를 자연에 풀어주는 것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은 제돌이를 방사할 장소로 제주 앞바다라는 표현 대신 구럼비를 언급했고, 보수 언론은 이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보도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얽혀있는 복잡한 정치 역학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서울시가 정말로 '돌고래 정치' 의도했던 것인지 어떤지도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돌고래가 인간들 간의 팽팽한 권력의 망에 걸려있다는 것이다.


돌고래쇼가 무료 생태설명회로 바뀌면서 줄어든 서울대공원의 수입과 돌고래 야생방사에 들어가는 '혈세'에 대한 논란, 야생성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 등...시민단체, 위원회 간의 기싸움과 절차들 때문에 야생방사는 끝없이 지지부진한 단계 속에 갇혀있었다.


서울시, 시민단체, 언론사의 입장 대한 어떤 대안이 떠오르기보다는, 어느날 갑자기 자유를 빼앗긴 고래가 벗어나야  장벽이 비단 유리벽 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든다.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므로.



 하필 고래만? 대한 의문도 당연히 생겨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사실이지만, 불법포획된 장물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도 고래는 동물원의 전시 부적합종이다.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돌아다니는 고래는   미터의 수족관에 갇히면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현대 동물원이 교육적 목적과  보전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후와 생활을 고려했을  분명히 동물원 전시 부적합종이 존재하는 것도 무시할  없는 사실이다.


또한 인간이 가진 '인식론적 한계'안에서 특별하다. (324쪽) "유인원, 코끼리 등과 함께 고래는 거울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몇 안 되는 동물이다. 문화를 전승하고 교류한다. .../ 과학이 고래에 대해서 아는 건 많지 않다. 하지만 과학이 알려주는 한에서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책의 앞머리에 쓰여있듯,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 "박쥐가 된다는  어떤 기분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한  있다. 감각경험이 완전히 상이한 개체의 경험과 마음을 타자가 아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푸른 바다를 헤엄치다 우연히 그물에 걸리고, 육지에 던져져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있었다.


이 순간에도 내가 외면하고 있는 농장 동물, 실험 동물, 전시동물은 수없이 많겠지만..인간에게 다른 종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정말 있다면, 그런 인간의 시선이 닿는 곳부터라도 살펴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일본 수족관을 방문했던 때, 그리고 책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가 출간된 시점에서 시간이 많이 흐른 2022년, 전시동물에 대한 인식과 처우는 예전에 비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이상과는 멀다.

인간은 가까이에서 동물을 보고 싶어하고 만지고 싶어 한다. 이 변함없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고통 없이 공존할 수 있는, 모두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을 꿈꿔본다.






  나는 깨달았다.
동물원은 '다름' 관한 곳이라는 점을.
우리는 플라밍고와 호랑이, 악어를 연달아 보았다.  동물들을 보면서 나는  다른 동물에 대해 생각했다. 동물원의 풍경 속에 함께 있으면서도 철창에 갇혀 있지 않은 동물.
그것은 바로 인간이었다.

- 카제즈, <동물에 대한 예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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