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잠깐만, 여기 내가 넣었던 집 같은데?' 이삿짐 아저씨가 말했다. 그 미강빌라에 들어갈 때 이삿짐을 우겨 넣어주셨던 아저씨가 이사를 가는 데 우연으로 또 함께 해주신 것이다. 우린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했다. 만조인 집에서 살 수 없었던 것. 지하를 탈출 했다. 작은 희망들이 빛줄기를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이사를 가는 집은 방이 하나 더 줄어서 방 두개, 복도식 오래 된 아파트였다. 빛만 바라볼 줄 알았지, 방이 하나 줄 듯 나의 작은 희망들이 줄어든 것은 몰랐나보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알았을 수도 있다.
이삿짐을 오래된 아파트에 올리려고 창문을 떼는 순간, 부주의로 아저씨들이 창문을 밑으로 떨어트렸다. 굉음과 함께 유리창 하나가 아파트 1층 바닥에 가루가 되어 있었다. 현재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 유리창이 유리창이 아니라 나였어야 한다고. 그때 그 유리창을 보며 나를 깨달았어야 하는데, 어렸던 내 자신이 깨닫지 못한 것이 지금, 그토록 한심하다.
아파트 위치는 물리적으로 아빠가 혼자 지내는 곳과 조금 더 떨어져 있었다. 그때 내가 꿈꾸던 작은 희망들을 전부 삭였어야 했는데, 그냥 좋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아파트에서의 삶이 나의 어린 시절 최고의 전성기 같다. 다가올 미래는 그 전에 살던 빌라 보다 더 어둡고 컴컴해질 것을 몰랐으니.
거기서도 아빠와의 왕래는 나름 잦았다. 그리고 엄마도 조금씩 사회에서 단단해지는 느낌이었고. 강아지 한 마리, 푸들도 입양하며, 나름의 적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웬지 모르게 그 집은 따숩고 행복했던 기분이 든다. 방황할 것만 같은 나를 위해 엄마가 없는 낮시간에 외가 큰 삼촌은 바쁜 와중에도 찾아와 아빠처럼 따뜻한 미소들을 보여주었고, 하나 뿐인 이모도 자주 와주었다. 외할머니는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 해주는 사람처럼 매일은 아니어도 늘 함께였다.
자, 이제 나만 잘 되면 돼! 내가 잘 되면 여기서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