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발파라이소의 어둠의 시간
오늘 밤은 어둠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곳 Chile, Valparaiso 에 도착한 건
Semana Santa (부활절) 기간 바로 전이였다.
남미 대부분은 부활절 연휴에 길게 쉬기 때문에 이 시기에 숙소 값도 오르고 이동 수단의 비용도 오르고
뭐 어느 나라나 다 연휴 기간에는 그러기 마련이니 -
뭔가 나와는 잘 맞지 않았던 수도 산티아고를 얼른 빠져나와 옮겨 온 이곳.
원래 숙소를 예약하고 다니는 스타일의 여행자가 아닌데 부활절 기간이라 숙소가 없을까 봐서
아주 오랜만에 숙소도 미리 예약했다.
Newka Hostel
호스텔을 찾아 발파라이소의 언덕을 오르는데 헛웃음과 함께 저절로 한 마디의 욕 방출 -
이런 언덕에서 11kg가량의 배낭을 메고 길을 헤매면서 숙소를 찾는 낭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바로 지나가는 행인을 잡고 호스텔 위치를 물어본다.
다행히 호스텔 위치를 알고 있었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저기 코너만 돌아가면 된다고 하며
내 배낭을 한번 쳐다보고는, 웃으며 격려를 해준다.
항상 생각하지만 이런 것이 바로 여행의 소소하면서도 따뜻해지는 순간 인 듯하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 -
아주 친절했던 주인, 그런데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Jack 이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영어도 아주 잘했고 발파라이소는 물론 다른 여행지에 대한 추천도 해주고 여러모로 홀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대화 상대로 최적화된, " 역시 게스트하우스를 하려면 이런 느낌이어야 돼"라고 생각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리고 방을 안내해주는데 분명 예약할 때 4 bed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가 안내해준 방은 7 bed라서, 물어볼까 하다가
"오늘 밤은 너 혼자 쓰게 될 거야"라는 그의 말에 그냥 군소리 없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결국 머무는 4일 동안 3일은 혼자 사용한 행운이 - )
그리고 그가 열어준 창문으로 펼쳐진 발파라이소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끙끙거리며 올라올 때의 힘듬은 어디로 갔는지 이미 알 수 없었고 내 마음속에는 그저 감탄만이 가득했다.
그는 그 아름다운 풍경에 감격스러워하는 나를 뿌듯하게 한번 쓱 쳐다보고는,
매일 이 풍경을 보며 지내고 있을 것임에도 이 풍경들이 여전히 지루하지 않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너무나도
따뜻한 느낌의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방의 풍경이 우리 호스텔에서 가장 아름다워, 너도 이곳을 사랑하게 될 거야.
짐을 풀고 호스텔 근처를 가볍게 돌아보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져있었다.
그리고 내 침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창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어둠의 풍경.
같은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비치던 곳에 달이 나타나 보여주는 또 다른 느낌의 풍경 -
너무나도 밝은 보름달 아래 펼쳐진 발파라이소의 언덕과 바다, 건물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조화롭게 아름다움의 극을 이루고 있었다.
그 어떤 말로도 그 느낌을 적합하게 표현할 수 없었고, 한참을 멍하니 그 풍경 속에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국 발파라이소의 4일 밤 내내 이 어둠의 마법에 빠져
매일 밤을 칠레의 향긋한 와인과 함께 창문 앞에 앉아 그 마법의 세계 속으로 기꺼이 빠져들었다.
이 마법 같은 어둠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을,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