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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n 30. 2022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우린 이제 나이가 들었어.’라고 증명이라도 하는  지인들 사이에서 종종 ‘ 대한 이슈가 등장한다. 여기서 집은 가정, 가족의 의미보다는 건물로서의 집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소유주로서 집을 가지는 것을 말이다. 건축회사는 법률상 건축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들었다. 인구 50만의 이 작은 도시도 새로운 아파트가 계속 지어지고 있다. 인구는 자꾸 줄어드는   많은 아파트들은  자꾸 지어져야 하며,  많은 아파트 중에  것은  없는 것인지 약간의 허탈함과 무력감을 더한 의문이 이어진다.


C 비혼을 선택했다. 현재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나 언젠가는 독립을  생각이기에(혹은 해야 하기에) 꾸준히 청약을 살펴보고 있다. C에게 집은 단순히 비바람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하나 편히 누울 곳의 의미를 너머 섰다. 부모님과의 분리가 필요했던 J는 지난 연말 심장이 없어질 것 같은 투쟁 끝에 독립을 얻어냈다. 주택소유자는 되지 못해도 세대주는 되었다. J에게는 건축시기가 언제인지, 평수가 넓은지 중요하지 않고 부모님으로부터 분리를 시켜줄 공간으로서의 집이면 충분했다. 결혼 3 차가  W 신혼집을 신혼부부 임대아파트로 시작을 했다. 지금의 집도 부부가 알콩달콩 살기엔 충분한 공간이다. 하지만 2 계획을 하면서 집을 넓혀야겠다 생각했고 청약을 넣어 당첨이 되었다. 비록 집의 지분 대부분을 은행이 갖기는 하겠지만 W 명의로  집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듯 집은 각자에게 다른 필요로서 존재하고 있다. 각자의 필요는 다르지만 우리의 선택지는 그렇게 넓지가 않다. 나에겐 당장 8,500원짜리 한식뷔페면 충분한데 무리해서 많이 먹지도 못할 35,000원짜리 호텔 뷔페를 선택해야 하는 느낌이다.


 역시 현재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물론 타의 , 자의 반으로 독립을 계획했던 적이 있었긴 했지만 독립의 이유가 없어지면서 무산되었다. 간혹 주변 어른들은 나이도 있는  독립을 해야 하는  아니냐는 얘기들을 하신다. 오지랖 넓은 어른들의 마음늘어가는 독립자들의 숫자가 더하여져 얇디얇은  마음도 팔랑거릴 때가 있다. '그래 나이 들면서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들은 되든 안되든 해본다는데 나도 청약을 넣어볼까?’  옷이 나에게 필요한지, 몸에 맞기는  건지 살펴볼 생각도 없이 솔깃한 마음이 앞섰다. 남들은 오른발, 왼발 보폭을 맞춰 걸어가고 있는데 나만 반대로 총총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걸음대로 가야지 싶다가도 가랑이가 찢어질지언정 보폭을 맞춰 걸어가야 하나 순간이 종종 생긴다.


내 가랑이가 찢어질 일이 집뿐 일까? 평범함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계속해서 그 기준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게임을 하듯 지켜야 할 선을 그어놓고 조금이라도 그 선을 밟으면 ‘너 선 밟았어.’라며 옆에서 외치고 있는 거 같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면 게임에서 진거처럼 옆에서 외쳐댄다. 나이, 성별, 사회적 위치 등에 따른 당연함은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 당연함을 지키지 못했을 때 듣게 되는 외침은 우리를 점점 공벌레로 만들어버린다. 살짝 건들기만 해도 마음을 동그랗게 말아버리고는 ‘방어력 +1, 공격력 +1’ 메시지만 띄우고 있다.


이쯤에서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나는 정해진 기준안에 있는 것을 안전하고 편하다고 느낀다. 기준과 규칙이 있으면 그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어기지 말아야  범위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속에서 누릴  있는 자유로움을 최대한 누린다. 다시 말하면 세상이 말하는 평균속도에 맞춰서 당연한 것들을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앞에서는 ‘  같은 속도로 살아야 ? 조금 다르게 사는  비정상은 아니잖아?’라고 외치고 있지만 내적 외침은 불안함, 열등감, 피해의식, 위축된 마음을 담고 있다. 당장의 삶이 불편하지 않고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누리고 있다가도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인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은 수시로  찾아온다. 사실은 기지개 한번   없는 옷인데도 남들이  입고 있으니 한번 입어보고 싶고, 목이 꺾어질 무게의 왕관이라도  번은 써봐야 하는  아닌가 라는  진짜 마음이다.


지키지 않으면 안 될, 무리해서라도 속도를 맞춰야 할 평범함이라는 것이 진짜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가랑이가 찢어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평범함은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구령 소리에 맞춰 숨 가쁘게 걷지 말고 내 걸음대로 속도대로 끝까지 잘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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