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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l 01. 2022

설렘을 동반한 호기심의 위험

어릴 적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너는 호기심이 많아서 언젠가 사고 한번 칠 거다’


호기심은 많으나 겁도 많고 적당히 소심한 덕에 사고를 많이 치면서 자랐던 건 아니다. 굳이 밝히자면 가위로 아버지 와이셔츠 소매를 자른다거나, 라디오를 분해하는 정도의 호기심이었다. 어떤 다음의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 행위가 하고 싶었을 뿐이다.  


사건은 어머니가 서울 병원에 다녀오시던 그날 밤에 일어났다. 어머니는  달에 한번 서울에 있는 병원에 정기검진을 가신다. 병원이랑 가장 가까운 역은 수서역이어서 어머니는 SRT 타야 했다. 살고 있는 지역엔 SRT 오지 않는다. 살고 있는 곳에서 SRT 타는 방법은 KTX 타고 근처  도시로 가서 갈아타거나, 차로 40 남짓 걸리는 S으로 가서 바로 SRT 타는 것이다. 어머니는 예매를 못해 자리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환승하는 쪽을 선택하신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계획은 그랬다. 하지만 다른  보다 진료가 늦어졌고 예매했던 표는 반환을 했다. 환승 표를 다시 예매하려고 했지만 이미 매진이  상태라 어쩔  없이 S역으로 오는 표를 사셨고, 나는 기차 도착시간에 맞추어 어머니를 모시러 가기만 하는 거였다. 이슈가 일어날 상황이 전혀 없었다.


기차 도착시간은  9 30. 그날은 볼일이 있었 집이 아닌 조금 낯선 곳에서 출발을 했다. 집에서 S역은 수도 없이 다녀본 길이 내비게이션이 없이도 간다(카메라 위치도 대충 알고 있다). 하지만 그날은 익숙한 길이 아니어서 나의 운전 동반자, 친절한 네비 씨의 목소리를 의지하여 출발을 했다.


‘낯선 길을 간다니!!’


스멀스멀 설렘이 올라올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이때부터가 위험한 호기심의 시작이었다. 네비 씨가 S역 가는 방향을 친절히 알려주는 동안 길에는 ‘S역’ 가는 방향이라며 표지판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친절한 네비 씨는 그 모든 길을 쿨하게 외면했다.


‘우와 다른 길로 간다. 신난다. 신난다.’


친절한 네비 씨는 계획이 있겠지 싶었다.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에 설렘까지 더해 네비 씨만 믿고 따라갔다. 그날 따라 유독 크게 보이는 표지판을 뒤로한 채 말이다. 신나게 달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지만 처음 가보는 길이 재미있기만 해서 그냥 해맑게 신나게 달렸다. 큰 도로를 달리다 작은 동네 골목으로 친절한 네비 씨는 나를 인도했다.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도착한 곳이 치과이면 이런 기분일까? 우리 네비 씨는 무슨 생각인지 밤 9시 반에 가로등 하나 없고 주변엔 공터, 공사장, 밭만 있는 곳이 S역 가는 길이라며 나를 인도했다. 정작 네비 씨도 헤매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바로 옆에 자동차 전용도로가 있고 5분 거리에 S역이 있었지만 어떤 위성도 나를 S역으로 안내하지 못했다. 마치 뫼비우스띠 위를 돌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몰고 간 차는 그날따라 왜 이리 더 크게 느껴지는지. 길은 차 한대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고 여차하면 옆으로 떨어지거나 바퀴가 빠질 거 같았다. 막다른 길을 만나 후진해서 나오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곳을 30분간 뱅뱅 돌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어야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길을 40년간 광야를 돌았다던데, 그 마음을 한 5.1% 정도는 알 거 같다. 블랙홀이 여기였고, 카오스가 여기였다.


여차하면 나의 첫 차박이 인적 드문 촌 길 한가운데가 될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오늘 하룻밤을 차에게 지낼 수 있는지 확인했다. 차에 먹을 것은 없고, 휴대폰 배터리는 점점 떨어지는데 차에 충전기는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기름은 넉넉했다.


‘저기 건물이 있는 데 한번 가볼까? 아냐 누구 만날지 알고, 어쩌지,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냥 차에서 잘까?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이럴 때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하지? 소방서? 경찰서?'


결국엔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옆에 무슨 도로가 있는지, 대충 위치가 어디인지 설명을 했지만 경찰도 딱히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일단 나의 존재가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것은 알렸으니 됐다. 경찰관의 목소리에 안정감을 느끼며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했던가, 얼떨결에 금방 큰길을 찾아냈다.


‘고작, 겨우 1분 거리라니... 난 여태 뭘 한 거지...’


안도감과 환희에 경찰님께 큰 인사를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친절한 네비 씨는 잠시 직무정지를 먹었고 나는 표지판을 따라 신경주역까지 무사 도착했다. 이 와중에도 이 상황이 웃기고 재미있기만 했다. 아마도 난 거기서 차박을 했어도 혼자서 즐거웠 을 거 같다. 심지어 어두워서 그렇다고, 날 밝을 때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여하튼 그날은 무사히 어머니 모시고 안전하게 집까지 도착했다. 설렘을 동반한 호기심은 이토록 위험한 것이니 당분간은 잠시 접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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