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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l 04. 2022

한적한 시골마을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알람도 울리지 않는 어느 여름날 아침. 창밖으로 새소리와 빗소리가 어우러진 적당한 소음에 늦지 않게 일어났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 후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친다. 그러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소파에 드러누워 가만히 있어본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은 상태로 천장과 눈의 대화를 나눴다. 무척이나 오래된 기억이라 생각했는데 겨우 재작년 언니 집에서 보낸 여름휴가의 하루이다. 언니가 사는 곳은 꽤나 시골스럽다. 근처에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고, 배달앱 마저 거부해버리는 곳이다. 2차선 도로 하나만 건너면 논과 밭이 있고 비가 오는 날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그런 곳이다.


2020년에 방영했던 ‘여름 방학’이라는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 있다. 서울 생활을 하던 두 배우가 강원도 고성에서의 시골생활을 담아냈다. 집은 천장이 나지막하고 비밀스러운 문을 가진 다락방이 있다. 마당에는 조상을 알 수 없는(우리는 똥개라고 부르는) 멍멍이 한 마리가 있고, 덧 밭에는 여러 채소와 열매들이 익어간다. 밥을 해 먹고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고 친구들과 마을 탐방을 하는 것이 주된 일상이다. 처음엔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을 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보다 보니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꼭 한번 시골생활을 하겠노라고 65번째 결심을 하게 한다.


자주 가는 카페의 영수증에는 제일 아래에 ‘한적한 시골 마을까지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한적하다 못해 가끔은 적막하기도 한 동네에 카페가 있다. 길 건너에 있는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4명이고, 근처에 있는 역은 하루에 다섯 번 무궁화호가 오간다. 길목에 서있으면 사람 소리, 자동차 소리보다 새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곳이다. 지난겨울, 카페를 찾은 어느 날의 메모이다.


‘풀리지 않는 글을 적다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맞은편 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보인다. 선생님 한 명과 3,4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한 반 인 듯하다. 운동장을 뛰어놀고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추운 겨울 따뜻한 카페에 막 들어서서 핫초코를 한잔 하는 느낌이다. 카페 밖, 춥지만 시원한 바람과 나무 한가득 들리는 새소리는 겨울이지만 봄의 기운을 느끼게 했다.’


시내버스는 30분에 한 대가 겨우 지나가고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곳이다. 평일 저녁엔 7시 문을 닫아 저녁을 먹고 커피 한잔하러 가기엔 더더욱 힘든 곳인데도 사람들은 찾아온다. 나 역시나 집에서 차로 25분이나 걸리는 곳인데도 일주일에 2번이나 갔으니 말이다(지방의 작은 소도시의 25분은 서울에서의 1시간 ~ 1시간 30분 비슷한 체감이다).


SNS에서 알게  카페에 앉아있는 동안   끝은 노트북에 올려져 있고 카페엔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창밖으로는 뜨거운 여름견디고 있는 논이 있고 나지막한 오래된 주택들이 보인다. 시골스러움과 서울스러움(?!) 적절한 조화가 굳이   곳까지 카페를 찾아오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몸은 끝없이 문명의 이기 앞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며 앞으로 가려고 하지만 마음의 원함은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시골,  자연스러움이 주는 편안함에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맡기고 싶어 한다. 바람을 타고 오는 새소리,  밝은 늦은  바라보는 바다의 울렁임은 힘든 등산길에  모금 들이키는  한잔과 같은 것이다. 쉬지 않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은 등산의 좋은 방법이 아니다.   모금과 함께 누리는 쉼은 앞으로만 향해있던 시선을 돌려 옆에 피어있는   송이를 보게 하고  걸음  내딛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연이 흘러가는 그대로의 시간을 보며 들을  있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에 숨구멍을 뚫어 놓는 것과 같다.


여름이다. 해수욕장들은 하나둘씩 개장을 하고 있고 주말이면 바닷가에 캠핑카들이 줄지어 있다. 작년 여름휴가를 초극성수기, 한 여름에 갔더니 이게 휴가인지 더위에 극기훈련을 하는 건지 모를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올해 여름은 작정하고 쉼을 가지기로 했다. 성수기를 피하기는 못했지만 짧은 휴가를 일찌감치 다녀올 예정이다. 남은 휴가는 땅의 열기가 조금 식혀지고, 바람에 가을이 담겨있을 무렵 다시 가고 싶다(남들 일할 때 나는 놀겠다는 심산). 산과 바다가 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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