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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n 29. 2022

어쩌다 운전 이야기

대중교통만 이용해도 이동이 그리 어렵지 않은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씩 차가 생기면서 얻어 타는 일이 많아졌고 여하튼 차가 없어도 그리 불편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겨울방학이 되면 운전면허학원에 사람이 그렇게 많다던데 당장 내가 불편하지 않으니 따야겠다는 생각을 굳이 하지 않았다. 면허를 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서른이 넘어 직장을 옮기고 나서다. 도시에 들어오는 길목쯤에 직장이 있었고 오가는 버스는  시간에 3대 정도가 있었다. 집에서 걸어서 편도 40, 아침부터 40분을 걷는 것은 출근하는  몸에  짓이 아니라 생각해 애초에 포기했다. 20분에  대가 지나가는 버스가 다행히(?!) 집 근처를 지났지만 그마저도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 이참에 면허를 타야겠다.’


32살 여름, 나의 삶에 일어난 큰 변화였다. 필기시험은 시중에 판매하는 문제집만 가지고 독학(이라고 말하니 너무 거창하지만)으로 공부해서 한 번에 합격했다. 그리곤 장내시험과 도로주행, 시험이 어려워지기 전이라 이것도 한 번에 붙었다. 그렇게 나의 운전 인생은 시작되었다. 집에서 고작 7.4km, 10분 거리에 있는 직장을 가는 데도 손에는 땀이 넘쳐났다. 집에 오랜만에 놀러 온 남동생을 옆에 태우고는 같이 출근을 했다가, 나중에 다시 데리러 오라고 한 적도 있다. 귀찮아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별 수 없었다. 운전이 언제부터 익숙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매일같이 운전을 하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되었다.


면허를 따고 3개월 뒤쯤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탔다.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옆 도시였고 친구의 일정이 동행했다. 톨게이트를 처음으로 지나는 순간이 아마도 엄청 설레고 떨렸을 텐데 기억력 탓인가,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나의 첫 고속도로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사람이 경험치가 쌓이면 조금은 용감해지거나 무모 해지는 법, 이동하는 거리가 점점 더 멀어졌다. 동행하는 이 없이 혼자서 고속도로를 타보겠다며 처음으로 간 곳이 3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언니 집이다. 별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성공했다! 해냈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그리곤 지금은, ‘오히려 고속도로 운전이 쉬워요.’라며 직장동료를 꼬시고(?!) 있다. 고속도로쯤이야 라는 생각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도전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은 가지고 있다.


다행히 9년 차 드라이버 인생에 아직까지 큰 사고는 없었다(이런 얘기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고라고 하기 엔 무색했던, 첫 번째 ‘긁음’은 처음 고속도로를 탔던 그날 갔던 지역에서 일어났다. 좁은 골목엔 빼곡하게 주차가 되어있었고, 이제 막 초보티를 벗은 나는 넓이 감이 없었다. 이런, 우회전을 하다 주차되어있던 차를 긁어버렸다.


‘아... 나의 첫 사고는 이렇게 나는구나.’


바로 차에서 내려 차주에게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이렇게 하다가 저렇게 되었다며 문자를 남겼다. 카페를 운영 중이신 차주님께서는 가게일 때문에 갈 수도 없고, 차도 오래된 차라서 긁은 티도 나지 않을 테니 그냥 가라고 하신다. ‘사람이 이럴 수 있구나, 이렇게 선할 수 있구나’라고 감탄을 하며 그래도 그냥 갈 수 없으니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렸다. 아량이 넓으신 차주님은 역시나 같은 대답을 해주셨다. 역시 처음 경험이 중요했다. 천사 같은 차주님을 만난 덕에 나의 첫 사고 경험은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조심성이 많은 건지, 아니면 겁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 뒤로 이렇다 할 사고는 없었다. 단지, 혼자서 인도 턱을 긇는다거나 가만히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주차 차단봉을 박는다거나 하는 일 말고는 말이다. 여하튼 9년 차 운전 인생을 그렇게 험난하게 보내지는 않았으니 감사하고 다행일 뿐이다.

 

사실, 오늘은 경험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운전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냥 운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어때, 이렇게나 써놨는데. 비가 온다 온다 하더니 진짜 많이 온다. 차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좋았나 보다. 천둥도 치고 번개도 치는데 그마저도 신이 난다. 여하튼 집에 조심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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