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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Apr 29. 2022

너의 어두움까지 사랑해

사실은 이해받고 싶다는 것을

어린 시절 다녔던 교회 앞에는 새총 모양의 애매한 삼거리가 있었고 횡단보도가 두 곳에 있었다. 4차선에 있던 횡단보도는 자동차든 사람이든 잘 지켰지만, 2차선 도로에 있던 횡단보도는 무용지물이었다. 맞은편 블록으로 가려면 2차선 도로를 건넌 후 다음 신호를 받아 4차선 도로를 건너야 완전히 넘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2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는 시간을 아낀다는 핑계로 가뿐히(?!) 무시하고 4차선 도로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6학년 늦여름, 맞은편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들어왔고 그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 편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보편성이라니 – 가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서 냅다 달려버렸다. 그 장소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사람이 내가 될 줄이야. 가벼운 사고이긴 했으나 오른쪽 복숭아뼈가 부서지면서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고, 얼마 동안은 목발을 나의 오른발 삼아 다니게 되었다. 20년도 더 지난 사고이지만 그때의 후유증으로 오른발은 왼발보다 조금 더 부어있고 피부에는 수술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리를 다친 이후로 무릎을 꿇는다거나 발목을 젖히는 자세를 오랜 시간하고 있으면 오른쪽 발목에 약간의 불편함이 생긴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한번 다친 뼈는 100% 회복이 되지 않고 이따금 나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적도 있다. 돌길에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을 좀 다쳤다. 바로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했지만 상처가 제법 깊었다. 상처가 오랫동안 남아있을 거 같았는데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다친 흔적이 없어졌다. 가끔은 손을 씻다 따끔해서 살펴보면 언제 베였는지도 모를 상처가 손에 있다. 손이 베일 때는 아무 느낌도 없다가 어떤 자극이 생기면 그제야 ‘아야’하고 상처를 보게 된다. 살면서 숱한 사고들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나게 된다. 눈에 보이는 몸에 상처도 이러한데, 상처의 크기나 깊이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베임과 부딪힘은 어떠할까.      


20대 시절 내 꿈은 28살에 결혼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결혼하는 나이가 많이 늦어졌지만 그 당시 여자 평균 결혼 나이가 28.71세였으니 내 꿈은 지극히 평균적이고 현실적이 꿈이었다. 의심 없이 실현 가능한 꿈이라고 믿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내 나이 27살이 시작되는 쯤에 만나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쯤 서로의 부모님을 뵈었다. 그리곤 1,2번은 더 그 사람의 부모님을 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부모님을 뵙고 난 이후 그 사람의 연락이 뜸해졌다. 아버지가 나를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뜸해지던 연락은 곧 일주일 정도 잠수가 되었고 잠수의 끝은 이별이었다. 통화로 말할 자신은 없었는지 – 그 당시 유행했던 – 싸이월드 비밀방명록에 아버지의 반대를 이길 수가 없다며 헤어짐을 통보했다. 몇 달간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지 못했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울고, 방에 틀어박혀서 우는 날들이 많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괜찮아졌다며 지나간 추억을 곱씹노라면, 어디선가 스멀스멀 뜨거운 마음이 올라온다. 벤치에 페인트를 칠해놓고는 이젠 다 말랐겠지 하고 앉았는데 이런, 바지에 얼룩덜룩 페인트가 묻은 기분이다. 한 번의 사건이고 기억이지만 - 추억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  그 이후로 벤치만 보면 남아있는 상처들이 떠올라 예상치 못한 두려움에 몇 번을 확인하고 앉는다거나 혹은 아예 서 있기를 선택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감정이 뒤늦게 올라오는 편이다. 화를 내야 하는 순간을 늘 놓치고 꼭 뒤늦게 ‘이렇게 말했어야지.’ 후회하는 경우가 생긴다. 슬픔에 대한 내 마음의 반응속도도 느리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땐 과도한 몰입으로 감정이 과하게 올라올 때가 있지만 나에게 온 슬픔에 대한 반응은 느린 편이다. 그러니 10년도 더 지난 일을 가지고 이제야 ‘나 괜찮지 않았구나, 이게 상처가 난 거구나, 나 아픈 거구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돌도 깨지기 마련이고, 철도 녹슬기 마련인데 사람 마음이야 오죽할까.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이리저리 차이다 닳아버린 마음도 연일 쏟는 비에 점점 녹슬어 가는 마음을 괜찮다 괜찮다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단지 상처로 인한 후유증이 싫을 뿐이다. 이리저리 부딪혀 깨져버린 마음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싫고, 빗물에 녹슨 마음이 다른 사람에 녹을 묻히게 될까 그것이 싫은 것이다. 겉모습은 번지르르하게 밝은 모습, 웃는 모습으로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괜찮아요.’ 말하고 있지만, 가면 뒤에 있는 모습은 들키기 싫어한다. 몇 날 며칠 청소 한번 하지 않은 상태의 마음을 들키기 싫어 혹여 누가 볼라치면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 더러운 것들을 모두 밀어 넣고는 또다시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괜찮아요.’      


친한 언니가 책 선물을 보내오면서 짧은 메모를 적어놓았다. ‘너의 어두움까지 사랑해.’ 이 짧은 문장에 왜 마음에 물결이 일어났을까? 마음의 반응을 보고 나니 알 거 같다. 사실은 이해받고 싶었다는 것을. 모난 채로, 더러운 채로, 어두운 채로 있어도 괜찮다고 그래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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