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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게으름

비 오는 날에는 수제비

by 김작가입니다

친한 동생이 군위 화본역 근처에 맛있는 콩국수 집을 찾았다며 함께 가자고 약속을 잡았었다. 조금 이른 장마가 시작되었고 지난주에도 한 이틀 비가 제법 내린 것 같다. 오늘도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일단은 보기로 했다. 아침이 되어 동생은 몸이 고단했는지 눈이 안 떠지고 여전히 침대와 한 몸이라는 말에 그럼 멀리 가지 말고 아쉬우니 가까운 데서 뜨끈한 국수라도 먹고 오자고 약속 시간을 다시 잡았다. 집에서 나서야 할 시간이 다되어 가는 데 내 몸도 밍기적밍기적. 비는 또 왜 갑자기 그렇게나 쏟아지는지,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비 갑자기 너무 오는 데? 우리 오늘 꼭 가야 할까?"

"그렇지?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데?"

"그래 그럼 오늘은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자."

"응응~ 우리 둘 다 비 올 때 돌아다니는 거 안 좋아해서 다행이야."

"그래 급한 거 아니니깐 다음에 가자!"


사실 나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상태였다. 약속은 했으니 가야 긴 가야 할 거 같고, 비는 오고 귀찮기는 한데, 안 나가자니 아쉬운 우리의 마음이 다행히 한 곳으로 합쳐져 각자의 휴일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의 목표는 게으름으로 정했다. 평소에도 부지런한 편은 아니지만, 어쨌건 오늘은 비가 오니 합당한 이유로 게으름을 선택한다. 책도 정리해야 하고, 여름옷 박스 정리에 베란다, 화장실 청소 등 할 게 많았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침대로 직행이다. 최근에는 나영석 피디가 제작한 '지구오락실 시즌3'에 꽂혀서는 한 참을 정주행하는 데 배가 점점 고파진다. 혼자 있었으면 배고픔이 극에 달할 때까지 있다가 겨우 머라도 챙겨서 먹었을 텐데 오늘은 비 때문에 운동을 가지 못한 아빠도 집에 계신다. 점심은 멀 먹어야 하나 싶은데 뜨끈한 수제비 생각이 난다. 때마침 감자수제비 사리를 사둔 게 있어서 밀가루 반죽을 따로 할 필요도 없다. 비도 오니 오늘은 얼큰한 김치수제비를 해야겠다. 감자전까지 해볼까 싶지만 내 부지런함이 거기까지 달하지는 못하고 수제비 정도만 해야 했다. 주방에서 사부작 움직이니,


"점심은 수제비?"

"어 안 그래도 수제비 하려고. 김치 수제비로!"


오늘은 아빠랑도 마음이 맞았다. 잘 익은 신김치를 송송 썰고, 애호박, 감자, 파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는 수제비 사리와 함께 푹 끓인다. 청양고추도 살짝 곁들인다. 밀가루 반죽이 주는 걸쭉함이나 보통 생각하는 수제비의 비주얼은 없었지만 제법 맛있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을 먹으니 혈액순환이 확 되는 게 땀이 살짝 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저녁엔 6개월 만에 미용실에 들러 머리카락도 잘랐다. 5센티가 잘릴 걸 생각하고 4센티 정도만 잘라달라고 했지만 결국 6센티 정도가 잘려나가긴 했어도 기분 전환하는데 미용실 만한 곳이 없다. 숱까지 치고 나니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원장님이 조금 독특하긴 해도 말을 안 걸어서 좋다. 어렵게 어렵게 나랑 맞는 미용실을 찾아 거의 4년째 다니고 있는 데 다른 지역만 가시지 않으면 좋겠다.


점심 먹고, 한숨 자고, 두 시간 정도 볼 일을 보고 나니 저녁 시간이다. 저녁엔 갈치도 굽고 점심에 하지 않은 감자전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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