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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흥미의 이유

by 김작가입니다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언젠가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후 슬전생)’를 재미있게 봤다. 무슨 프로그램이든 본방을 잘 챙겨보지 않는 편인데 '폭싹 속았수다'를 이어 오랜만에 본방을 챙겨 본, 주말 밤을 드라마 시간에 맞춰서 움직일 정도의 흥미를 일으킨 드라마였다. 본편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후 슬의생)'은 병원 전반적인 과에 대한 내용이 다뤄졌다면 '슬전생'은 산부인과 1년 차 전공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흥미의 시작은 본편인 슬의생을 재미있게 본 이유였고, 본방을 사수할 만큼의 재미를 유지하게 된 것은 배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와 간간이 들어있는 로맨스도 한몫했지만 그것 말고도 몇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산부인과 이야기이니 당연하게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극 중 오수영은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시험관을 시도해 봤지만, 몇 번의 도전에도 임신은 되지 않았고 결국은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떤 엄마는 급성 감염과 반복되는 병으로 인해 뱃속의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고, 출산 후 과다출혈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산모가 나오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결혼을 하면 아이가 생기는 것은 모두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많이도 아니고 20대 중반만 되어도 알 것 같았다. 아이는 둘째치고 결혼부터가 기적 같은 일이고 그 결혼생활을 평화롭게 잘 유지하는 것 또한 모두에게 당연한 것이 아니며, 큰 무리 없이 임신을 하고 뱃속의 아기가 무사히 세상 빛을 보게 되는 것은 결혼보다 몇 배의 기적이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결혼한 지 1년 남짓 된 B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나이가 있는지라 아이 계획도 바로 가지고 있었다. 언제든이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대하고 있었지만 마음처럼 아이가 금방 생기지는 않았다. 주변에 비슷한 시기, 혹은 보다 늦게 결혼한 지인들의 임신 소식은 B에게 남모를 압박이 되기도 했고 결혼 1주년을 맞게 되자 B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았다. 그런 중 친구부부의 둘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친구부부는 결혼 준비 중에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겨서 이미 배가 부른 채로 결혼식을 올렸고 첫째를 출산했다. 그러곤 우리 집에 둘째는 없다고 외쳤지만 연년생으로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계획에 없던 두 번째 임신이라 당혹감이 적지 않았는지 아기 엄마는 감사의 얘기보단 약간의 우는 소리를 SNS에 몇 글자 올렸나 보다. B는 친구부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며 혼자서 우는 날도 있었다.


미혼인 나는 현재로는 '산과'의 경험은 없지만 나이가 있는지라 주변에서 많은 경우들을 보고 듣기도 한다. 시험관을 준비하다 죽을 고비를 넘긴 친구도 있고, 시험관을 성공하여 쌍둥이 딸을 키우고 있는 친구도 있다. 용하다는 한의원 앞에서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려 진료를 보고는 임신을 했다는 언니도 있고, 열심히 병원을 다니면서 시험관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 장면에선 이 친구가 생각나고, 다른 장면에선 또 다른 지인이 생각나게 하는, 어떤 순간엔 애틋함마저 느끼면서 드라마를 봤던 것 같다.


내 흥미의 두 번째 이유는 슬전생의 유일한 빌런인 산과 펠로우 2년 차 '명은원 선생님'이었다. 이미 슬의생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레지던트 시절에는 곰인 듯 하지만 알고 보니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로 등장한다. 펠로우가 된 슬전생에서는 동기보다 교수가 빨리 되려고 교수님들께 잘 보이면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후배가 작업한 논문을 자신이 한 것처럼 가로채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거짓말을 일삼기도 해 빌런이 되었다. 후배 의사들에겐 당직을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선배이나 교수님들에게는 인정을 받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결국 교수 임용에서는 떨어지고 먼저 교수가 된 동기를 '교수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극 중에 명은원 선생님과 주변의 관계를 보며 떠올려진 사람들이 있다.


최근 한참 어린 후배의 연애와 소위 말하는 어장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창창한 시절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의 과정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조금은 빗나간, 안 그랬으면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았을 어떤 일들에 대해 제법 듣게 되었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그 속에 어떤 결핍들이 후배의 행동에 영향을 줬을 테고, 그 행동들로 인해 누군가는 혹 누군가들은 상처를 받고 후배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은 부정적인 평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얘한테 그런 면이 있었구나, 그건 좀 너무했네'라는 말이 오가기도 했다. 그리곤 '가만히 있어도 충분히 사랑받을 친구인데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지'라는 안타까움이 생겼다.


후배를 명은원 선생님에 빗대어 빌런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반응을 보며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서 봤다고나 할까? 슬전생에서 교수님들이 명은원 선생님에 대해 칭찬을 하고 인정을 하는 것은 교수님들에게는 잘했고 실력적인 면에서도 크게 흠잡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안타까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친구의 연애사와 내가 전혀 상관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후배와 내가 비슷한 연령대이고, 내 연애나 일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에 있었다면, 여자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여우짓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보다 한참은 어린 후배이기에 영향을 주고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나한테는 잘하기 때문에 후배의 행보가 나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단지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평가정도로 그치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한테는 잘하니깐, 나한테만 잘 하면 돼'라는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좋은 시에 딴지를 잠시 걸어본다.

사람은 어쩌면 멀리서 흐릿하게 대충 볼 때 제일 예뻐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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