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40마리 키우는

내 남사진

by 김작가입니다

남사친 H는 4년 전쯤 촌으로 들어갔다, 자식 3명 키우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소를 자그마치 40마리나 키우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병원 원무과에서 한참 일을 하다 병원이 어려워지면서 서울로 도피 아닌 도피를 했다. 서울에서도 병원에 취업해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곤 한참 왕래가 없다가 오랜만에 들린 소식이 자동차 정비 일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라니, 느닷없는 소식이었다. 정비 일을 배운 후 서울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H는 수입자동차 정비 공장에서 또 얼마간 일을 했던 거 같다. 과정을 거쳐 지금 삶이 머무른 곳이 소를 키우는 일이 되었다. 3일 전에 내 전화를 받지 못한 것도 추운 겨울 아픈 소를 돌보느라 정신없었다며 이제야 기억이나 콜백을 해왔다.


통화가 20분 남짓 이어졌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몇 년이나 되었냐, 고등학교 때 만났으니 27년이나 되었다며 징글징글하다 싶었는데 전화를 끊고 다시 계산해 보니 29년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만나 40대 중반인 지금까지 연이 끊어지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을 얘기하다 보니 뒤늦게 생각이 났다.


‘아, 내가 H를 2년 동안 좋아했었지’


짝사랑이었다. 나는 H를 좋아하고, H는 내 친구 Y를 좋아하고, Y는 H에게 관심도 없었다.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었나 떠올려보면 거절을 당한 기억은 없으니 다행히 고백은 안 했나 보다. 그래도 H가 Y를 좋아한다는 것은 또래친구들은 다 알고 있었으니 거절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름 순애보였던 나의 짝사랑이 끝난 것은 고등학생이 되면서였다. 이런(?!) 녀석을 좋아하면 안 되겠다는 정신차림이 그냥, 갑자기 들었다.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범생에 가까운 쪽은 아니었고, 적당히 공부하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다. 내가 일찍 철이 든 것인지 그 녀석이 여전히 철이 없었던 건지 어쨌거나 더 이상 좋아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고는 2년 동안의 짝사랑은 아주 깔끔하게 끝이 났다. 고등학교를 보내고, 대학교를 가고 각자의 시간이 부지런히 흘러간 후 우리는 40대 중반이 되었다.


“별일 없고?”


짧은 질문에 부모님의 건강 문제, 야구를 하는 첫째의 진로, 나이 들어가는 각자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거라는 H의 말에 너는 행복하냐고 되물으니 안 행복하단다. 어두움은 없었지만 무거움은 있다. 아이들 나이 생각하면 앞으로 20년은 더 열심히 벌어야 한단다. 맞다, H는 가장이었다.


날이 참 춥다.

체감온도가 –15도는 된다는데 소들은 건강하고,

H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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