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분명하다
월요일 아침, 남들에게는 토요일 아침과 같은 날이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빡세게 출근을 하고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날이다. 일요일 밤 잠들기 전에 알람을 꺼놨어야 했는데 또 잊었다. 7시 30분부터 울려대는 알람덕에 아침잠은 다 잤다. 5분 뒤, 8분 뒤 울려대는 알람을 가뿐히 무시하고는 침대에서 몸을 미적거린다. 투잡 혹은 쓰리잡 인생이기에 본캐 쉬는 날인 오늘도 할 일이 있었지만 몇 시간 뒤의 내가 할 일이기에 지금의 나는 침대와 여전히 한 몸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 '경도를 기다리며' 마지막 회를 보고 있었던 거 같은데, 기다리던 경도는 만났는지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보다가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결말은 봐야지 싶어 기억나지 않는 부분부터 다시 시작했다. 경도와 지우가 서로를 위해 헤어지는 장면이 왜 그리 슬프던지, 아침 댓바람부터 눈물바람이다. 확실히 나이가 들었나 보다. 눈물이 많아졌다. 어쨌거나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서 다행이다.
배는 고프지만 몸은 여전히 침대 위에 있고, 눈은 알고리즘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K에게서 전화가 왔다. 월요일 아침에 낯선 그림이다. 며칠 전 소개팅에 나온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게 아침부터 K를 열받게 했다. 거절의 말을 해야겠는데 그마저도 스트레스라 아침부터 열을 올리고 있다. 같이 열을 올려주고는 갑작스레 점심 약속이 정해졌다. K의 전화 덕분에 내내 나른하던 잠이 깨고 몸을 좀 일으켜보았다. 몸을 움직이니 역시나 배가 더 고프다. 본능에 이끌려서 밥을 찾아먹고는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책 주문이 들어와서 우체국도 가야 하고, K를 만나기 전에 일을 좀 해두려는 생각에 바지런히 움직였다.
대표님에게서 온 카톡 알람이 울린다. 연속으로 몇 개 울리는 걸 보니 분명 일이다. 이럴 땐 절반만 반갑다. 나는 언제 쉬냐며 대표님에게는 닿지 않은 투털거림을 혼자서 해봤다. 부캐의 삶도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아 쉬고 싶다. 오늘은 유독 연락 오는 곳이 많았다. 딱 하루만 어떤 알림에도 답을 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업무가 어찌 됐건, 입금건이 어찌 됐건 그냥 죄다 씹어버리고 글을 쓰다 책을 보다 잠을 자다 먹다가 그러고 있었으면 좋겠다. 분명 하루만 그렇게 있어도 연락이 올 때가 좋은 거구나 하며 다시 열심히 살 수 있을 거 같다.
이번 거래처는 요구사항이 유독 많다. (돈도 많이 안 주면서... 주절주절) 끝까지 맘에 안 든다며 역시나 아침부터 주절거리는 대표님의 말에 왜인지 모르지만 드라마 대사가 생각이 났다.
"나도 누군가에겐 개X끼다."
대표님에게 하려던 말은 아니다. 거래처 담당자도 누군가의 오더를 받아 요구를 하는 것일 테고, 밟아야 하는 절차와 갖춰야 하는 서류가 있는 거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좋은 마음으로 이해를 하기보다는 어떤 한계점에 닿아 포기와 같은 마음에 나온 이해였다. 그러고 나니 우리도 다른 누군가에겐 까탈스러운 거래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나의 가치관, 결정, 생각들이 옳고 바르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다른 면에서 나도 누군가에겐 개X끼일 수 있겠다는 작은 깨달음이었다. 쉬는 날 오전 시간과 어울릴 깨달음은 아닌 거 같지만 말이다.
스타벅스에 앉아 대표님이 투척한 일을 금방 처리하고는 원래 하려던 '편집' 업무를 시작했다. 1시간 30분 정도 빠짝 일하고는 K를 만나 점심을 먹는데 그렇게 나른할 수가 없다. 집에 가서 한숨 딱 잤으면 좋겠는데 오늘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책 작업이 남아있다. K와 헤어지고는 다시 스타벅스로 향했다. 집에 가면 분명 미적거리다 안 할 거 같으니 나온 김에 일을 마무리하고 갈 요량이었다. 쉬는 날 지금 이러고 있는 건 과거의 내가 부지런하지 않았던 탓이라 여기며 지금의 나를 다독였다. 두 시간 반을 고대로 앉아 작업을 했다. 책 작업을 할 때마다 매번 놀랜다. 내 엉덩이가 이렇게 무거웠던가? 내 집중력이 이렇게 좋았던가? 학교 다닐 때 진작에 이렇게 공부를 좀 하지 싶으면서도 '나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편집일을 시작한 이후로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자주 읽지도 않으면서 책 한 권 편집을 끝내고 나면 꼭 책을 찾게 된다. 지난주 1차로 마무리를 하고선 무언가에 이끌려 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곤 손에는 책 두 권이 들려있었다. 대표님은 편집을 하고 나면 무슨 책이든 보기 싫어진다는데 나는 반대이다. 정리가 되지 않은 원고를 보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정돈되고 잘 만들어진 책을 보면서 풀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거 같다. 여기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목표한 시간에는 맞추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저녁 전에 파일을 넘기고는 부리나케 장을 보고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냉동실에 쟁여놓을 어묵탕, 맑은 소고깃국을 하고 메추리알 조림을 하고 샐러드 야채까지 정리해 두니 저녁시간 금방 지나갔다. 글을 좀 써볼까 싶은데 전복죽이 먹고 싶다던 아빠의 말이 생각났다. 후딱 죽을 끓여놓고는 다시 글.
오늘도 가득 채워 열심히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