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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Apr 12. 2022

말이 하고 싶어서

그래서 결론은

쑤기님(글쓰기 모임 동기)에게 전해줄 것이 있어서 잠시 만나기로 했다. 집 근처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다고 하셔서 그곳으로 약속을 잡았다. 쑤기님은 29살의 딸을 가진 중년의 여성이다. 정확한 연세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15살 이상은 많지 않을까 하고 짐작을 해본다. 쑤기님은 글쓰기 모임에서 한번 뵌 적이 있고, 사적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15살 이상 차이가 나는 두 명의 여성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얘기가 머가 있을까 싶었다. 막상 만나보니 공통점이 몇 가지 있었다. 같은 글쓰기 모임에서 만났다는 것과, 둘 다 산을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몇 년째 항암치료를 하고 계시고, 쑤기님은 3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하셨다. 쑤기님의 남편분은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계시는 것도 놀라운 우연이었다.


쑤기님을 만나서 갑자기 말문이 트인 거 마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부모님의 나이 들어감을 곁에서 고스란히 봐야 하는 자식의 마음, 편찮으신 엄마를 보며 늘 마음을 졸이는 순간들, 결혼 적령기가 지난 여자가 가진 두려움. 생각해보니 별 이야기를 다하고 돌아왔다. 세상을 몇 년이라도 더 살아본 어른으로 또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할 법도 한데 쑤기님은 어른의 충고를 나에게 건네지 않으셨다.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했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그냥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목소리를 듣고, 그 순간의 표정과 분위기를 공유하면서 하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최근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떠도는 생각들이 많았다. 나이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쓸데없이 그냥 생각이 많은 것인지, 어쨌든 정리되지 않은 몇 가지의 생각들과 마음들이 계속 떠돌고 있었다. 말할 곳이 마땅히 없었다. 내 생각과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주고 공감해줄 누군가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나 보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자기 연민으로 비칠까, 내 이야기가 끝이 난 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어떤 작은 동정이 될까 지레 겁을 먹고 얘기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친한 친구들은 분명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겠지만, 나의 무거움을 상대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닫혀 있던 내 말문을 쑤기님이 열어주신 거 같다, 말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 번씩 굉장히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래서 결혼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작년 여름,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부모님은 병원에 오실 수 없는 상황이고 형제들은 타 지역에 있었고 나는 보호자가 없는 환자가 되었다. 집에서 갖고 와야 할 물건들이 있었는데 친구에게 집 비밀번호까지 알려주면서 부탁을 했다. 몸이 아프고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 되니 결혼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오늘, 말을 하고 싶어 지니 결혼 생각이 난다. 이런 이유가 맞는 건가... 싶기도 한데 어쨌거나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다행인 거 같다. 이런 식의 결론을 내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이게 가장 말하고 싶었던 나의 본심 인지도 모르겠다. 입에 단내 안 나게 살려면 그래, 그래야 하나 보다. 머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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