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향 Apr 20. 2022

어떻게 하는 거였지?

우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2015년 3월, 엄마가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지금은 8년 차 암환자로 살아가고 있다. 다른 암들에 비해 완치가 쉽지 않은 병이라 반복되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몸에 맞는 약이 있는 것에 감사하고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3년 전, 외출하고 집에 오니 엄마는 오한이 와서 덜덜 떨고 있었다. 첫 번째 응급실 행이었다. 입원실에 올라가기 전 수액을 맞고 겨우 진정이 되어 잠든 엄마를 확인하고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씩씩하지는 못해도 울지 않고 말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담담하게 엄마의 소식을 전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잠든 엄마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엄마가 너무 안쓰럽기도 하고 그 상황들이 겁이 나기도 해 눈물이 차올랐다. 누구든 와서 내 옆에 같이 있었으면 좋겠고,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그 한마디가 간절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도 길지는 않았다. 엄마가 잠에서 깼고, 나는 수도꼭지를 잠그듯 눈물을 잠그고 엄마를 봐야 했다.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인데도 지난 8년 동안 마음 놓고 제대로 운 날이 없었다. 엄마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언니는 불안함에 나에게 전화를 하는 횟수가 전보다 많아졌고, 아버지가 내비친 걱정과 불안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가족들을 보며 ‘나는 울면 안 되는구나. 내가 가족들 앞에서 울면 다 같이 무너지겠구나.’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내 눈물 마개는 닫혀버렸다. 눈물 마개를 열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한번 열고나면 고장 난 수도관 마냥 눈물이 솟구쳐 나올 까 봐 찔끔찔끔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눈물을 참으면 땅 위의 물이 말라버리듯 없어질 줄 알았는데 언제 터질지 모를 물풍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어나갈 틈도 말라버릴 틈도 없이 물이 차오르는 풍선이 혹여나 터질까 전전긍긍하는 날들이 길어지고 있다.

 

3주 전에 다녀온 M언니 어머니의 장례식. 2020년 9월 암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전이가 된 암세포를 이기지 못한 채 1년 반 정도의 투병생활 끝에 가족들 곁을 떠나게 되셨다. 어머니의 소식을 늘 듣고 있었기에 언니도 가까운 지인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고, 나 스스로가 감당이 안 될 눈물을 흘릴까 봐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눈물이 나지가 않았고 감정마저도 덤덤한 상태로 있었다. ‘내 감정이 고장 났나? 나 되게 슬픈데 왜 눈물이 안 나오지?’ 순간의 내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그리곤 며칠 전, 장례 소식이라며 뜬 카톡에 친구 Y 어머니의 성함이 있다. 편찮으셨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없는데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하니 심장마비라고 한다. 역시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장례식을 가서 Y를 마주했는데, 이번에도 무슨 이유인지 눈물이 나지가 않는다. 꼭 울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순간에 눈물이 나지 않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또다시 당황스럽기도 했다. 슬픔의 순간에 함께 울어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이 들었고, 마음 한 켠으로는 울 수 있는 합당한(?!) 기회를 놓쳐버린 당혹감도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눈물이 나지 않았던 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가진 담담함이었을까 아니면 무감각이라는 도구의 나의 방어기제였을까. 어느 쪽이든 가을 산의 쓸쓸함과 서글픔이 밀려온다.


'아무것도 아니다,  지나간다,   아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어서 그런 말들을 할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정할 뿐이지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은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우는 방법을 잃어가는 것 같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울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눈물이 많은 것이 흠이 될 것 이 아닌데도 점점 감추며 살아간다. 무감각이라는 방어기제 있다고 해서 100%의 방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대단한 방패를 가지고 있는 것 마냥 앞세워서 살아가고 있다. 아픔이 아픈 줄도 모르고, 슬픔이 슬픈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담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 앞에서 정신 못 차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가 되기보다는 굳건하게 서있는 나무가 되길 바랐다. 나는 굳건하다고, 굳건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채찍질했다. 나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거나 억누르며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담담한 사람이 아닌 덤덤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마음이 서글퍼진다. 적어도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는 그 정도의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평범함이 왜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