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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l 14. 2022

글을 적기를 잘한 것 같다.

1년 넘게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권씩 정해진 책을 같이 읽고, 작가님이 주시는 미션에 따라 글쓰기도 꾸준히 한다. 모임에서 정해지는 책들의 대부분은 내가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주제들이다. 어쩌면 잘 모르는 영역이었기에 정보가 없어서 선택하지 못한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주제들은 내 선택으로는 아예 사지도 않을 책도 있다. 모임을 통해 반강제로 읽지 않으면 책꽂이에 쌓아놓기만 하고 눈요기 용도로 사용되는 책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달에는 읽어야 하는 책의 분량이나 숙제를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넘어가는 달도 생긴다.     


얼마 동안은 글이 읽히지가 않았다. 나에게 내용이 흥미롭지 않아 진도가 안 나갔던 것 같다. 5월 중순이 넘어가면서는 글테기가 제대로 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막차를 타면서 체력은 바닥을 쳤다. 남들은 인후통에 그렇게 고생을 했다던데 인후통은 전혀 없었고 기침도 이틀 정도 하고는 말았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코로나에 걸리면 어쩌나 하며 오랜 기간 하고 있던 긴장이 풀려서 일까 몸이 아주 바닥을 뚫고 지하 15층까지 꺼질 기세이다. 몸이 이러니 글에 집중일 될 리가 없다.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고 글을 쓰기 위한 상상을 하는 것도 버겁고 귀찮은 일이 되었다. 수정을 봐야 할 시집 원고가 있었다. 일주일 동안 휴가 아닌 휴가를 얻었다 생각하고는 수정을 제대로 끝내겠다 싶었지만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호기롭게 책을 두권이나 집어 들고 격리를 시작했지만 한 장이라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글자는 읽고 있지만 글이 읽히지 않았다. 책을 펼쳤지만 하얀색은 종이고 까만색은 글자겠거니 했다. 노트북을 열고 머라고 써볼라치면 머릿속에서 나오는 단어라고는 전혀 없다. 무기력함의 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글 하나는 쓰겠다고 브런치의 알람도 맞춰놨지만 것도 소용이 없다. 읽고 싶은 글도, 쓰고 싶은 글도 없이 그렇게 5월이 지나갔다.      


우연인지 6월에 편집을 봐야 하는 책도 시집이고 글쓰기 모임에서 읽게 된 책도 시집이었다. 시집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데 그냥 흥미가 없었다. 아마도 단어 하나하나에 시인이 담겨놓은 의미들을 생각하는 것이 귀찮음이 된 듯하다. 책 출간을 해야 하고 편집을 해야 하니 내용을 꼼꼼히 안 읽을 수가 없었다. 글을 수정하려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했고 흐름상 이 단어가 적절한지 이 문장이 자연스러운지 봐야 했다. 수정하느라 시를 보고, 책 제목을 정하느라 또 보고, 표지 디자인을 정하느라 또 봤다. 그러다 보니 시가 읽혔다.

     

글쓰기 모임에서 읽었던 시집은 김용택 님의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라는 라이팅 북이다. 국내외 다양한 작기들의 시가 담겨있고, 필사를 할 수 있는 페이지도 만들어져 있다. 3주 동안 하루에 한 편의 시를 필사해서 카페에 올리는 것과, 시를 하나를 정해 거기에 맞는 1500자의 글을 적는 것이 6월의 숙제였다. 작가들이 다양하니 문체가 달라서 지겹지가 않았다. 필사를 하니 내용이 나에게 더 깊이 들어왔다. 시 하나를 선택해서 글을 적어야 하니 내 삶을 더 깊이 들어야 보게 되었고 시 내용을 더 깊숙이 이해하고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이 읽히기 시작하고 글이 다시 적히기 시작했다. 작은 이벤트라도 생기면 ‘브런치 글로 적어야지’하는 생각이 따라온다. 글이 적히니 속에서 떠돌던 것들이 자리를 찾아간다. 글을 적어야겠다고 처음 마음을 먹었을 때도 그랬다. 마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바람에 민들레 잎이 날리듯 그렇게 떠도는 것들이 자리를 잡아갔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마음에 내려앉지도 않은 채로 먼지처럼 떠도는 것들이 말이다. 부유하던 것들이 자리를 찾아가니 다시 힘이 생긴다.      


글을 적길 참 잘한 것 같다. 언어를 통해, 글자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하고 속에 것을 밖으로 꺼내놓는 것, 그 글을 적길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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