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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Sep 17. 2022

이런, 저런, 그런

안전거리 확보

명절 전 수해가 났던 지역 가까이에 살고 있다. 살고 있는 곳도 태풍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큰일이 없이, 피해 없이 지나갔다. 추석 연휴 수해지역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49년 만에 멈췄다는 포스코 앞 도로에는 여전히 흙먼지가 가득했다. 추석 전 대목에 물이 가득 찼던 대형마트 주차장은 줄로 다 막아놨고, 침수차량인 듯 보이는 차 한 대가 제자리를 잃은 채로 덩그러니 있었다. 주차장 곳곳은 흙더미가 가득했다. 도로 옆 산 곳곳에는 무너진 흔적이 가득이었다. 비가 오면 치즈가 흘러내리듯 당장이라도 흙들이 도로를 덮칠 기세였다.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그 광경을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아이고, 저런 어쩌냐.... 어휴 저기도 저러네.’ 짧은 탄식과 안타까움의 한숨이 연이어 나왔다.


불현듯, 본능적으로 나온 나의 반응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신기했다. 사람이 참 이기적이구나 싶을 만큼 지극히 제삼자의 반응이었다. ‘이런’과 ‘저런’ 한 글자의 차이이지만, 두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제법 컸다. 어떤 문제 앞에서 ‘이런, 이 일을 어째...’가 돼버리면 내 눈앞에 일어난, 내 어깨 위에 얹어진 내가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처럼 느껴지지만 ‘저런’은 그렇지가 않다. ‘여기와 저기와 거기, 이것과 저것과 그것’에서 느껴지는 미묘하고 애매한 거리감이 있었다. 착잡함과 안타까움이 있고, 그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도 하지만 그 문제를 완전히 나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보통의 반응이다.


내 눈물 버튼은 상대방의 눈물이다. 나의 일 앞에서는 눈물을 삼키는 편이지만, 내 앞에서 누구라도 눈물을 글썽거려버리면 이내 내 마음도 울렁거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더 많이 울고 있을 때가 있다. 결혼식장에서 양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는 신랑, 신부를 본다거나 이별의 아픔을 토로하는 있는 후배를 보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타인이 겪고 있는 상황이나 그 감정에 작정하고 집중을 해버리면 온갖 슬픔의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들어와 나의 감정이 되어버린다. 고개의 끄덕거림으로만 끝났으면 하는 감정이 짙은 흔적이 되어 오랫동안 지워지지가 않는다.


이렇듯 잔상이 오래 남는 편이라 감정의 소모가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서 보지는 않게 된다. 아마도 엄마의 항암치료가 길어지면서 인 듯하다. 드라마에서 누구 하나라도 아프다는 설정이 있다거나, 아파서 죽는 장면이 있다 싶으면 애초부터 시작을 하지 않는다. 태풍의 흔적 앞에서 지극히 제삼자의 모습으로 그 광경을 대했던 것은 방어기제로서의 ‘회피’였을 것이다.


공감으로 시작된 감정이 자극으로 남지 않게끔 적정한 선을 가지면 좋겠다만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잠잠하던 강이 순식간에 불어나 온 동네를 덮은 거 마냥 어떻게 손을 쓸 시간도 없이 감정이 밀려와 넘쳐버리고 그대로 휩쓸려 가버린다. 감정의 자극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회피’이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회피’ 혹은 ‘도피’를 선택하는 것이 이기적이고 최선은 아닐 수 있으나 때론 제법 괜찮은 방법이 된다. 책임을 회피하며 멀리멀리 도망치자라는 말은 아니다. 타인과 나 사이에 최소한의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3,4년간 가까운 지인 여럿에게 힘든 일이 생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힘든 것들을 토로했다. 그때는 친구가 느끼는 감정, 문제들을 내 것으로 고스란히 다 가져왔었다. 당장에 내가 해결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고, 친구의 감정을 해소시켜줘야 할 것은 의무감을 넘어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전화를 끊은 후에는 감정이 쉽사리 덮혀지지는 않았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골머리를 썩으며 그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삶의 무거움을 고대로 다 가져와서 느끼고 있으니 내 감정이 남아나질 않았다. 관계의 안전거리 미확보, 거리의 균형에 실패한 것이다.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 공감과  위로, 격려는 무한정으로 줄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함께 짐을 들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가지고 있는 감정까지 내 것으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상대의 어깨에 놓여있는 짐의 무게는 그가 견뎌야 하는 그만의 것이고 나는 또 나만이 감당할 수 있는 감당 해내야 하는 짐의 무게가 있다. 각자의 짐을 들고 길을 걷다가 서로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잠시 손을 나눠주면 된다. 내가 옆에서 같이 걷고 있다고 그러니 힘을 내자고 말 한번 건네면 되고 목말라하면 가지고 있던 물 한잔 나눠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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