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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Sep 26. 2022

거꾸로 가는 시간

부모님의 시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를 다시 봤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였고, 그 당시에도 꽤나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벤자민’은 80세 노인의 얼굴과 몸을 가진 채로 태어났다. 남들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늙어갈 때 주인공은 젊어지는 혹은 어려지는 몸을 가지고 있다.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다가 마지막엔 갓난아기의 모습을 하고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벤자민’의 어머니는 아기를 낳고는 세상을 떠났고, 80세 노인의 얼굴을 한 아들의 얼굴을 본 아버지는 이내 아기를 안고서는 냅다 달린다. 그리곤 어느 건물 계단에 아기를 몰래 두고 온다. 아이를 두고 온 저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궁금할 찰나에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나온다. 누군가가 소변을 옷에 누었고, 기저귀를 해야 한다는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만 들으면 ‘저긴 아이들을 돌보는 곳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곳은 치매노인들이 있는 요양원이었다.


80세 노인의 얼굴을 가진 아기와 실제 80세의 노인, 아기의 얼굴과 몸을 가진 80세 노인과 또 실제 80세의 노인. 이들에게서 공통점이 보였다. 양쪽 다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노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아기가 되어 밥을 먹여줘야 한다거나 기저귀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은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태어나서 수년을 살다가 원점, 다시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서 돌아가게 된다.


10년도 더 된 이 영화가 다시 생각이 난 것은 부모님의 흘러가는 시간을 보면서였다.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부모님은 딱 그만큼 늙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 나이가 불혹을 훌쩍 넘긴 후 중년의 소리를 들을 만한 나이이고, 부모님의 나이가 막 저만치 많은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고, 집안은 여전히 엄마의 손에서 돌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이제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가까워져 간다는 것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특정 나이가 되면 마치 가속도가 붙은 거 마냥 나이 들어감이 삶 전체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 초저녁 잠이 많아진다고 얘기만 들었지 부모님이 밤 9시가 되면 졸리다고 들어가실지 몰랐다. 잠이 많아진 아버지가 어색하다 못해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다. ‘언니, 아빠가 9시만 되면 자러 들어가. 잠이 너무 많아진 거 같아. 괜찮은 건가?’ 나의 물음에 언니는 ‘아빠 이제 할아버지야. 그 연세엔 잠이 많아지는 게 당연한 거야.’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운전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이제 장거리 운전을 할라치면 눈이 금방 뻑뻑해지고 피곤해하셔서 장거리는 운전은 나의 몫이 되었다. 이전에는 부모님이 하는 게 당연하고 그게 자연스러웠던 일들이 하나둘씩 내 몫이 되어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간혹 엄마가 병원 일정으로 집에 며칠간 안 계시는 날이면 집안일은 당연히 나의 몫이 된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쉴 틈이 없이 바로 저녁을 준비를 한다. 아버지와 같이 저녁을 먹고 치우고는 다음 날을 준비한다. 아침을 미리 준비해두고 가능하면 아버지가 드실 점심까지 챙겨놓는다. 그러면서 틈틈이 세탁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집안일은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표시도 안 나고 끝도 없는 집안일이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 저녁을 무얼 해서 먹나,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무엇인가, 마트에서 멀 사야 하나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워킹맘으로 있는 직장동료가 뜬금없이 생각난다. ‘아니 워킹맘들은 이걸 다 한다 말이야? 하루 종일 해도 끝이 안나는 게 집안일인데 워킹맘들은 일을 하면서 이걸 다한다고? 이 상황에서 애까지 있다고?’ 워킹맘들을 향한 예찬론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예찬론이 시작되면 나의 노고에 대한 어떤 평가나 안쓰러움, 자기 연민이 덜어진다. 내 나이의 대부분 혹은 다수의 사람들은 결혼을 한 후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아이가 있을 법 한 나이다. 그래서 집안 살림이 살짝 버거워 지려고 하면 그래 내 나이면 애도 낳아서 키우는데 부모님 돌보면서 사는 게 머, 아이는 밥도 챙겨주고 먹여주고 씻겨주고 잠자리도 챙겨주고 재워줘야 하는데 근데 엄마 아빠는 그거 다 알아서 하잖아. 웬 엄살이야 싶다. 단지 조금 특수한 상황이라면 엄마가 암환자라는 것이, 그래서 조금의 긴장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이 없었다. 언니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네가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그렇게 돌보면서 사는 걸 그냥 아이 키운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싶었어.’ 언니의 말에 서운함이 바람 불 듯 스쳐가진 했지만 괜찮아졌다. 짐의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지만, 마음의 방향을 좀 틀어보니 짊어지고 갈 만한 짐이라고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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