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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Mar 06. 2023

봄이잖아

매일이 봄 일수도 있잖아

*   이제 10대 중반이 된 첫째 조카가 한창 뽀로로에 빠져있을 나이의 어느 날이었다. 봄을 제법 누릴만한 날이기도 했다. 저만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조카가 보였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이모가 온 지도 몰랐다. 일부러 멀찍한 곳에서 쪼그려 앉아 팔을 한껏 벌리고는,  “유하야~“


이모를 발견하고는 냅다 달려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피곤이 싸악 가셨다. 달려와 그 짧은 팔로 나를 안아주는데 하마터면 눈물바람을 보일 뻔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따듯했던 품이었다. 겨우 내 몸의 절반정도되는 아이의 팔이고 손이었지만 그 순간은 나보다 3배는 더 큰 사람 같았다.



**   “이모 좀 안아줘”

조카들을 만나 어른의 칭얼거림을 보여줄 때가 있다. 아이들은 약간의 부끄러움을 띠며 다가와 안아준다. 어른이 전해줄 수 없는, 더 크고 따듯한 온기가 아이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   이제 10살이 된 막내 조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살며시 내 손을 잡으며 얘기한다. “이모, 사실 나는 엄마보다 이모가 더 좋아” 이 말이 진실이 아님을, 혹은 선택적인 상황에서의 진심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참 따듯했다.



****   “요즘 잘 지내요? 별일 없어요?”라는 물음에 이 정도면 제법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그 정도면 별일이 아닌 것 같아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라며 답을 해본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면 별일이고 아닌 일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내가 미처 배려하지 못한 내 마음은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머라고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날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작은 토닥임에 출처 모를 울렁임을 느끼며 그제야 ‘나는 괜찮지 않구나.’ 깨닫고는 뒤늦게 나를 챙겨본다.



*****   마음의 형태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붉은색의 잘 감아놓은 동글동글한 실타래를 그릴 것이다. 그래서 그 실타래는 시선을 맞출 때나 등을 살포시 토닥일 때나 두 팔을 벌려 상대가 내 품 안에 있게 하는 그 행동을 할 때 나의 것이 상대에게, 상대의 것이 나에게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아주 미세한 실로 서로 엮여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 그리고 실타래의 온도는 36~37도이다.


******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매일을 봄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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