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향 Jul 05. 2023

또 장례식장

고모가 돌아가셨다.


"처남, 큰 누나가 죽었다."


이틀 전 아버지는 매형(나의 고모부)에게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천국으로 가신지 한 달도 안 되어 집안에 장례가 또 생겼다. 아빠의 큰 누나가 돌아가신 것이다. 큰 고모네와 우리 집의 입장이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유가족과 조문객으로 바뀌었다.


엄마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면서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아빠, 부모님들 세대에 돌아가시는 게 엄마가 시작인 거 같아."

"그렇지. 다들 연세가 많으시니 이제 시작인거지. 그게 인생이고 순리다."


엄마가 시작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두 번째 장례식장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죽음이었다. 4월 말 병원에서는 길어야 6개월이고,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질 수도 있다고 얘기를 했었다. 6개월이면 가을쯤인데 왜인지 나는 엄마가 여름을 못 넘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명확히는 6월까지는 생각도 못하고 5월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엄마의 상태가 변하는 속도를 보며 언니와 나는 엄마의 죽음이 이쯤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떤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감’이 그랬다. 엄마의 마지막 순간은 우리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 덕분에(?!) 우린 여러모로 큰 무리 없이 막힘없이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다.


고모는 80세에 지병이 있으시긴 했지만 당장 오늘내일하는 상태가 아니었고 일상을 사시던 분이다. 고모부와 두 분이서 사시면서 끼니때마다 밥을 해서 드셨고 바깥 활동을 하셨다. 그렇기에 고모의 죽음은 가족들에겐 낯설도 무서운 이야기일 뿐이다. 고모의 죽음을 혼자서 지켜본 고모부는 반쯤은 정신이 없는 상태로 아내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계셨다. 친척 언니들과 오빠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혼이 빠진 상태로 그 모든 과정을 보내고 있었고, 당장 홀로 남게 되시는 85세의 노부를 어찌해야 할지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




요즘은 80세를 넘어 100세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난 사실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 세상 오래 살아서 머 하나 싶은 마음은 아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잘 누리면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당장 어떻게 돼도 크게 미련이 없을 만큼 굵고 짧게 사는 것이 내 인생 마지막 순간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를 보내면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보다는 좀 더 의미가 있고,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제대로 살아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고모의 죽음,  엄마와 또 다른 형태의 죽음 앞에서 낯설지만 힐끔 거리게 되는 생각들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죽음은 시기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모두에게 예정되어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늘 예상을 하지 못한 거 마냥 갑작스럽고 낯설게 마주한다. 나이, 이유 등 모든 것이 다른 여러 가지 모양의 죽음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하면서 살고 있음에도 죽음은 늘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그것은 신이 만들어 놓은 당연한 섭리이다. 부모의 죽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형제&자매의 죽음, 친구의 죽음, 누군가는 자식의 죽음을 맞닥뜨리며 살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죽음을 누군가가 애도하는 시간도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 그 시간을 반기지는 못해도 어떤 태도로 그 시간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살 것 인지가 중요해졌다.


1년 전만 해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우주 저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말이었다. 그렇게 무서웠던 말이 삶의 실제가 되어 들어오고 나니 옆에 두고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옆에 있어도 되지만 나한테 말 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또 힐끔거리게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변덕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