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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n 05. 2023

엄마는 변덕쟁이

컨디션이 왜 좋아지는 거지?

사회적으론 코로나가 엔데믹의 시대로 들어갔지만 병원은 모든 게 그대로였다. 특히나 면역저하자들이 많은 암센터는 더욱 그랬다. 제한된 공간과 만날 수 있는 사람도 극히 제한적이다. 그렇게 갇혀있는 병원생활이 엄마에겐 일주일이 고비였다. 길어야 열흘, 엄마는 집으로 오고 싶어 하셨다.


3주 전 엄마는 퇴원을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선택지는 엄마가 살던 우리 집과 이모집 두 곳이었다. 이모는 엄마를 돌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그곳에 와있기를 권유했다. 환경적으로도 아파트인 우리 집보다 전원주택인 이모집이 더 나았다. 엄마가 아무리 환자이지만 본인이 살림을 살던 집에 있으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생기고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상황들을 생각한 후 엄마의 선택은 이모집이었다.


침대가 있는 방에는 밤에만 계셨고 낮에는 주로 거실 소파에 누워계셨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비가 오는 날에 따닥따닥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기에 제격인 장소였다.




엄마의 컨디션은 대부분의 날이 좋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유독 기분이 좋은 날이 있다. 아마도 영양제를 맞고는 기력이 조금 올라온다거나 진통제 패치를 교체하고는 약 효과를 본 날이면 그랬던 것 같다. 날씨의 영향도 많았던 것 같다. 컨디션이 조금 좋은 날이면 엄마 특유의 유쾌함을 가지고 농담도 하고 웃기도 했다. 그러다 컨디션이 떨어지면 금세 우울모드로 들어갔다. 멍하니 창 밖을 보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너네 엄마 변덕쟁이됐다. 어제는 생글생글 웃더니 오늘은 또 저러고 있네.’


변덕쟁이가 된 엄마를 향한 이모의 장난 어린 투정이었다.




봄날에 한들 거리는 여자의 마음 마냥 컨디션이 왔다 갔다 했다. 그것 또한 말기암 환자들이 보이는 현상 중에 하나이다. 하루는 좋았다가 하루는 나빴다가, 계속해서 반복이 된다. 그러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질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6개월 된 아기 이유식만큼도 안 되는 양을 드신다. 그거라도 드시는 날에는 실낱 중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기도 했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엄마가 다시 입원을 한지 이튿날 오후부터 엄마의 컨디션이 조금 좋아지기 시작했다. 누런 가래가 끓고 있지만 무언가를 먹기 시작했다. 첫째 딸을 만난 덕분인지, 병원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 편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과일을 조금씩 먹고, 비스킷도 드셨다. 대변도 어느 정도의 점성을 가진 상태였다. 몇 주동안 TV도 보지 않으셨는데 즐겨보시던 예능까지 보셨다. 과일을 먹으면서 말이다.


엄마 컨디션이 왜 좋아지는 거지?


사람이 마지막 때가 다가오면 컨디션이 갑자기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순간인가 싶어서 마음엔 오히려 불안함이 빼꼼히 얼굴을 내비쳤다. 이때까지 혈압도 정상, 산소포화도도 정상, 손발은 따듯했다.


입원한 지 셋째 날 새벽, 엄마 몸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코에 산소줄을 끼웠다. 떨어진 산소포화도는 가래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현상인지 더 안 좋아지는 상태인지 CT를 찍어보기로 했다. 살짝 좋아진 듯 보이는 컨디션은 역시나 일시적인 현상이구나 싶던 차에


엄마가 비빔면이 먹고 싶단다.


늘 먹던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는 그 비빔면으로 말이다. 컵라면으로도 나오는 제품이기에 언니가 편의점에 가봤지만 보이지 않아 다른 매콤한 누들면을 사갔더랬다. 엄마가 그게 아니란다. 먹고 싶은 것이 확고했다. 저녁엔 병원서 나온 숭늉을 먹었고 보호자식에 나온 멸치 반찬까지 아주 조금 먹었단다. 진짜 컨디션이 좋아져서 좋은 건지, 아니면 반대의 경우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엄마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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