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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l 06. 2023

엄마의 첫사랑

가장 슬픈 일

2013년 계절이 여름 한가운데 있을 때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치매가 심해지시면서 요양원에 계신지 이미 몇 해가 지났고 병원에 계시는 동안에 몇 번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나는 타 지역 출장 중에 할머니의 소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생도 같은 지역에 있던 터라 부랴부랴 함께 집으로 내려왔다.


2박 3일의 장례기간 내내 나는 장례식장에 있었고 많은 손님이 다녀 갔을 텐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에 아주 적은 장면들만 남아있다. 아버지와 고모들은 조문객들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얼마나 울었고 그걸 보는 동안 내 감정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기억이 나는 것은 내가 장례식장에 도착한 후 유가족들이 쉬는 방에서 혼자 한참을 울었고 고모와 사촌 언니들은 그런 나를 밖에서 기다려주고 있었다는 것, 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깨를 들썩이던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들고 가던 남동생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아버지는 1남 3녀로 태어나 외동이었고, 남동생 역시 남자 형제가 없다. 그렇기에 발인을 하는 동안 할머니의 영정 사진은 손자인 내 동생의 몫이 되었다. 명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발인예배가 끝이 나고 차로 이동하는 길이였던 거 같다. 제일 앞에 서서 할머니 영정사진을 들고 가는 손자, 내 동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애써 울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게진 상태였다. 그렇게나 안쓰러웠던 그 모습이 당시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채로 오랜 기간 동안 나에게 눈물로 남아있었다.




엄마의 영정사진은 엄마의 첫 손자 튼튼이(첫째의 태명)의 몫이 되었다. 튼튼이가 영정사진을 드는 것은 언니도 나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할머니의 죽음이 손주들에게 어떤 의미로 삶에 담겨도 말이다. 솔직히는 엄마를 잃은 나의 슬픔에 갇혀 할머니를 잃은 손주들의 슬픔에 대해서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15살 된 튼튼이가 할머니가 영정 사진 앞에 서서 자신의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모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장지에 도착하여 가족들이 취토*를 하며 한 마디씩 하라고 했다. 아버지, 언니, 남동생이 엄마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또 눈물바다가 되었다. 나도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는데 뒤에 혼자 서서 울고 있는 튼튼이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품은 이미 동생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형부도 튼튼이를 미쳐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도 그제야 한참을 혼자 울고 있던 조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키도 나만큼 커버린 녀석이 나에게 안겨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엄마는 튼튼이를 늘 '첫사랑'이라고 불렀다. 튼튼이는 할머니가 자신을 향해 '나의 첫사랑'이라 고백하였던 것이, 15년 동안 받은 사랑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장례기간 동안 튼튼이의 상태프로필은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이 추억이 되는 것이다."

 







*하관 후 광중을 메우기 전에 상주가 옷자락에 흙을 싸서 영구 위에 던지는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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