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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l 08. 2023

예민보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을게요

어떤 에세이집을 읽게 되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하면서 써 내려간 책이었다. 저자의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오랜 기간 힘들게 보내시다가 결국 스스로 삶의 길을 선택해 버리셨다. 갑작스러운 헤어짐도 힘들지만 거기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아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따르는 일이라 감히 생각해 본다. 저자는 어머니를 보낸 후에 가 많아졌다고 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예민함도 있었겠지만 거기에 화가 더해진 것이다.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전날에 누군가에게 욱하는 마음에 했던 말을 다음 날 아침이면 후회하게 되는 그런 상태라고 했다.

  



엄마를 보낸 후 마음에 생기는 감정들은 세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감정이다. 단순히 슬프고 그립고 보고 싶고 허망하고 허전하고 헛헛하고 등의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몰려왔다. 그런 감정들이 신체화가 돼버린 건지 처음 얼마간은 몸이 그냥 아팠다. 어깨는 돌덩이가 된 거 마냥 내내 뭉쳐있었고, 팔다리는 몸살이 난 듯이 무겁다 못해 아프기까지 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몸에 기력이 없어졌다. 어떤 것에도 에너지를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틈만 나면 누워있게 되고 아무것도 안 할 수 만 있다면 한없이 그러고 싶은 날들이었다(자칫하면 내 꿈이 펜더로 바뀔 뻔했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했고, 아버지 밥과 집안일은 챙겨야 했고 일상은 살아가져야 했기에 몸은 움직여졌다.


’ 이제는 일어나야 해. 이제는 움직여야 해 ‘


마치 소파와 내가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연인이 된 듯 그렇게 찰싹 붙어있다가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주문을 외듯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의무적인 움직임은 다행히도 몸에 적당한 자극이 되어주었고 그 덕에 기분이 환기된다거나 감정선의 방향이 바뀌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긴 했다.  


그랬던 감정이 얕은 유리처럼 변해 버린 것은 아마도 고모의 장례를 치르면서 인 거 같다. 이미 위태위태했던 마음은 한 주 전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고 고모의 장례까지 감당하긴엔 두께가 너무 얇아져있었다(위태위태한 마음은 어쩌면  엄마가 투병하던 8년이 넘는 시간 내내 그랬을지도 모른다). '힘내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힘이 빠지는 말이 되기도 했고, 딴에는 걱정에 하는 말들이지만 그들이 선택한 단어와 반응은 도리어 의욕이 꺾이게 하고, 있던 힘마저 빼놓기도 했었다.


위에서 언급한 저자처럼 마음에 '화'가 많아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반응도가 30 정도 되었을 어떤 일들 앞에 감정을 방어할 새도 없이 기준치를 초과해 버리기도 했다. 시시때때로 널뛰는 감정들이 제어가 되지 않은 상태로 있으니 스스로 고슴도치가 되고 있었고, 독을 품은 복어가 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용납해 줄 수 있다고 하겠지만 소중한 내 사람들을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타인을 보호함과 동시에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들을 자연스럽게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와는 대화를 오래 끌고 가지 않거나 의무가 아닌 모임들은 가지 않게 되고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만남만 가지게 된다. 유리가 같은 상태의 감정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냥 좀 내버려 둬도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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