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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l 25. 2023

엄마의 주방

엄마의 시간

일요일 저녁 우리 집은 늘 루틴이 있었다. 나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엄마는 늘 '오늘 저녁 머 먹지?' 하며 문자가 왔다. 메뉴가 정해지면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샀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찬찬히 식사 준비를 하고 계신다. 엄마의 손길로 만들어진 저녁을 가족이 맛있게 먹고 나면 엄마는 식탁을 정리하고 나는 설거지를 시작한다. 고기를 구워 먹은 날이면 바닥청소는 아빠의 담당이 된다. 그러다 보면 TV에서는 '뭉쳐야 찬다(TV 예능프로그램)'가 시작할 시간이 되고 부모님은 소파에 앉아서 애청자모드가 된다. 식사 후 부모님이 취미생활을 하시는 동안 나는 설거지와 주방 뒷정리를 하고 나면 일요일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부모님은 머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TV를 보다가 주무시러 들어가고 나는 집안일을 마친 후 내 방에서 온전한 나의 시간을 가지다가 잠드는 것이 부모님과 나, 우리 3명의 오랜 습관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엄마의 부재가 시작되고부터 아빠와 나는 새로운 생활루틴과 환경을 만들고 적응해야 했다.


삶 속에서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순간은 수없이 많고 여전히 익숙지 않은 변화에 매번 다른 낯섦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적응이 필요한 부분이 '집안일'이다. 엄마는 병이 악화되기 전까지 집안일을 계속하셨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버지의 밥을 준비하셨고 주방은 마지막까지 엄마의 주방이었다. 멀리 있는 큰 딸과 아들에게 보낼 반찬을 정성스레 포장하셨고, 가족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던 그리고 엄마의 약으로 가득했던 엄마의 공간이었다. 엄마의 것이었던 공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가야 했다. 엄마의 살림을 나의 것으로 변화시켜가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숱한 마음의 걸림이 있었지만 하나둘씩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많은 집안일 중에서도 마음의 걸림이 가장 큰 것은 '밥'이다. 싱크대에서 쌀을 씻는 것이 그렇게나 슬픈 일이 될 줄 몰랐다. 한동안은 쌀을 씻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자꾸 났다. 밥이고 머고 나는 모르겠고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숱하게 올라왔다. 반찬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고 마을장아찌가 담긴 유리병이 느닷없이 눈에 들어왔다. 냉장고 속에 있던 엄마가 해둔 반찬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못 먹는구나.'


김치냉장고과 냉동실 깊은 어딘가에 정체 모를 무언가 들이 있다는 것과 먹든지 버리든지 어떻게든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선뜻 손을 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엄마의 옷가지며 신발 등 다른 유품들은 금세 정리를 했는데 냉장고는 차마 건드려지지가 않는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빠와 내가 출근한 후 엄마의 일상은 어땠을까? 6시에 일어나 남편의 아침 식사를 챙기고 출근을 시키고 나면 7시 30분쯤 딸이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고 밥은 마시듯이 훌떡 먹어버리고는 부랴부랴 출근을 한다. 그러고 나서의 엄마의 시간. 아마도 TV에는 아침마당이 틀어져 있었을 것이다. 딸이 나가고 난 뒤 느지막이 아침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10시쯤. 남편이 집에 올 시간이 되고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나?' 고민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콩국수, 냉국수 등을 후딱 만들어 냈을 거 같기도 하다. 남편과 점심을 먹고 나면 금세 오후. 쌓여있는 빨래를 돌리고, 널려있던 빨래를 정리하고 낮잠을 길게는 두 시간 짧게는 30분 정도 주무시지 않았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시간이다.


엄마는 끝까지 아내였고 엄마였다. 그리고 아내로 엄마로서 보낸 그 모든 시간은 엄마가 고통을 삼키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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