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가정원 Aug 09. 2023

김치볶음밥 받고 참치마요김밥!

치사랑과 내리사랑은 완전체입니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으로 살겠다고 합의했던 내가 가장 큰 힘을 쏟은 건 당연히 가족의 식사 챙기기였다. 아이들은 이유식부터 단계별로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것, 매일 출퇴근하는 신랑에겐 저녁 한 끼라도 대접해 주는 것으로 나의 사랑을 표현했다. 

애정표현이 없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나의 성격상 매일 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시전 할 수 있는 일이 입 속에 사랑을 담아 넣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14년이 흘렀고, 현재까지 나만의 사랑표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매해 계절이 바뀌듯이 너무나 당연한 일로 나의 하루와 함께 흘러가는 루틴이 된 밥상.



이렇게 전한 사랑이 얼마 전 나에게 더 큰 사랑이 되어 돌아왔다. 엄마의 사랑밥상을 먹고 자란 나의 아이가 아픈 엄마를 위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해 준 것이다.






지난 주말 새벽, 찢어질 것 같은 복통과 토를 하며 울부짖었고, 나는 급성위염을 진단받았다. 다행히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약을 먹으니 증상은 조금씩 호전되었지만 그 고통이 생생해서 좀처럼 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주말부터 사나흘을 거의 굶다시피 약을 복용하며 지내다 보니 기력이 쇠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피로가 덮치곤 했다. 



엄마가 화장실에서 아파하던 모습을 봐버린 딸은 아픈 엄마 주위를 돌며 챙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무더운 날, 저녁식사를 직접 준비했다. 



메뉴는 김치볶음밥과 계란프라이!



신김치를 꺼내고 써는 것만 엄마의 손을 빌리고, 햄을 찾아 들쑥날쑥한 크기로 자르고, 아빠가 하는 방식이라며 파를 씻어 쫑쫑 썰어 파기름을 만들어 요리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에 가지 않고 주방 옆에 쪼그려 앉아 있으니 



''요리가 진짜 쉬운 게 아니에요. 얘기만 들으면 엄청 쉬운데 막상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칼질도 어렵고..!''



''엄마가 식사준비하면서 덥다고 한 이유를 알겠어요. 와.. 진짜 엄마 대단해!''



''엄마 속은 괜찮아요? 저기 가서 쉬고 있어!''






연신 그동안 엄마의 노고와 현재의 상태를 살펴주는 딸의 모습에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치사랑'이구나 싶었다. 



지난 나의 시간들이 결국은 아이의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졌고, 그 세포들이 더 많아지고 커져서 이젠 내리사랑을 넘길 수 있을 만큼 자랐다는 생각에 주책맞게 눈물도 살짝 맺혔던 순간이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딸은 엄마가 했듯이 예쁘게 세팅까지 하는 것으로 요리를 완성했고, 그 맛은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신기하게도 죽도 잘 먹지 못했던 나는 딸이 만들어준 김치볶음밥을 한 그릇 다 먹었고, 회복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사랑이 담긴 밥은 어느 약보다 뛰어난 효능을 가진 것이리라.



아이의 사랑이 담긴 밥을 대접받았으니 엄마도 다시 돌려주고픈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은가?






방학 첫날임에도 학교에 수학캠프를 가야 하는 아이에게 아침을 챙겨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간단 참치마요김밥!



캔참치의 기름을 빼고 마요네즈, 설탕, 후추를 넣고 버무리고 단무지를 짧고 얇게 썰어주면 재료 준비가 끝나는 아주 간단한 메뉴지만 아침식사로 참 맛있고 든든하다.



김밥김이 아닌 조미김에 밥을 펴고, 참치 듬뿍과 단무지를 넣고 접시에 잘 담아주면 순식간에 완성되는 마법 같은 요리! 더운 날 불을 사용하지 않아 쾌적하게 한 끼 밥상을 준비할 수 있어 여름에 애용하는 메뉴이다.





여기에 과일과 시원한 물 한잔 곁들여 내어 주면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기다리는 아이가 보인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올려주며 먹는 모습이 더 사랑스러운 건, 아이가 보여준 '치사랑 밥상'의 여운이 남아서 이지 않을까?



보상을 바라면서 마음을 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뜻밖의 맞닿아진 마음이 선물이 되어 돌아올 때의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이 힘들 만큼 벅차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나의 아이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로 표현이 안 되는 울림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치사랑'을 당해본 자는 알 것이다. 이 사랑의 깊이도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랑임을...!

매거진의 이전글 이열치열! 바쿠테 한 그릇 먹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