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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정원 Oct 20. 2021

첫 발자국을 새기다.

8월, 어느 날의 결심


새벽녘,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일어나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지도 벌써 130일 여일 지났다. 무엇이 나를 이 길로 이끌어주었는지 매번 생각을 해봐도 아주 명쾌한 대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집에 뒹굴어 다니던 빈 노트를 한 권 집어 들고 깜장색 볼펜을 쥐고 나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던 이유는 명확하다. 그 당시 처음으로 나의 인생그래프가 가파르게 상승곡선과 하향곡선을 그리며 날뛸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답답함이었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도 없던 그때, 나의 마음을 붙잡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며 지내기 위해서는 어디에든 집중을 하고 신경을 분산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의 새벽 글쓰기는 서막을 올린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의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던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면서 점점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얼마만의 일인가? 오롯이 나의 감정에, 나만을 위한 행동에 시간을 할애한 것이!



결혼 후, 11년 여년의 시간은 나에게 더없는 행복을 가져다준 것은 틀림없다. 그 세월 동안 나는 한 사람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있음을 느꼈고 충분히 사랑을 주고 받으며 30대의 열정과 체력을 다 쏟아 부었다. 지극히 사적인 나의 감정과 내면의 자아를 돌보는 것은 어쩌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푹 젖어 지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고 해도 결코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만큼 나의 세계는 꽤나 협소했지만 그 의미는 심해만큼 깊고 짙다.



모든 선택과 집중이 가족에게 향했던 나의 30대는 찬란했고 그 어떤 후회도 없을 만큼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간이었다.      



나이 마흔에 접어든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의 30대는 이처럼 아름답고 좋은 기억이지만, 그때 당시 나의 일기를 보면 늘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지금보다 어린 내가 자주 등장한다. 그때의 나도 지금처럼 이따금씩 찾아오는 나를 찾으라는 목소리에 머릿속이 엉키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주기적으로 찾아 왔던 것이다.     



어제 나의 반려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법주사에 다녀왔다. 더운 날이라서 사람들이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요즘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나의 존재가 주는 부담감을 비워내고 싶은 마음에서 아침 일찍 서둘러서 길을 나섰다.



생각을 비워내고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장소에 다녀오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8년 전 큰 아이가 유모차를 타던 그 시절, 내가 이 곳에 다녀갔고 그날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카카오스토리 앱을 열고 추억을 찾아냈다. 기저귀를 찬 3살 아이가 퍼프물병으로 물을 마시며 빨간 유모차에 앉아 있는 사진, 아빠가 아이를 번쩍 들어 알록달록한 축제용 연등을 만져보게 하는 사진, 법주사의 하이라이트인 불상 사진까지 오랜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그 날의 기억들이 또렷하게 떠올라 한동안 혼자 배시시 웃으며 한참을 들여다 보면서 그 시절의 냄새과 온도에 젖어 있었다.



그러고 나서 눈에 들어온 그 날의 나의 짧은 일기!     



법주사!


종교가 불교도 아니고

어릴 땐 불경 소리도 무서워했는데

이젠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한동안 나를 누르던

많은 잡념들이

서서히 빛을 잃어

이젠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     


소리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인사도 없이

무심히 가버리는     

그래서

고맙기도 한

또 다른 나     

안녕...          



나는 어쩌면 그 시절에도, 지금도 나를 찾는 여행을 끊임없이 해왔는지 모른다.

다만, 남들이 이야기하는 제2의 20살을 맞이한 지금, 이 여행이 더 간절해졌기에 본격적인 이정표를 찾아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정해진 좌표도 없이 어떤 방식으로 여행길을 나설지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설렌다.



숱하게 매일의 연속을 살아오면서도 나를 위한 여행은 처음이다. 혼자서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어색하고 불안해서 못하는 나라는 인간이 내 안에 잠자는 나를 깨워 함께 나아간다는 결심을 한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여행의 첫발을 뻗었고, 앞으로의 행보가 낯설고 두렵지만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이제는 나를 찾으라는 또 다른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동행할 것이다.



첫 발자국을 남겼으니 이제 힘차게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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