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미치기 전에 방학이 오고, 엄마가 미치기 전에 개학을 한다.’ 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존재한다. 정확히 30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언저리에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출했고, 아침, 저녁 기분 좋은 선선함이 느껴지는 며칠 전 다시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보냄으로써 나는 구출되었다. 온종일 붙어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나누며 지지고 볶고 삼시 세끼를 차리는 돌림 노래에서 해방된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많이 없다. 30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의 일상이 일그러지는 것이 싫었기에 등교 때와 똑같이 7시에 기상해서 하루를 시작하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의무들도 비슷한 시간대에 챙겨서 해왔던 우리의 여름 방학이었다.
개학을 해도 7시 아침기상과 독서, 영어 영상으로 맞이하는 하루의 시작. 별다른 큰소리 없이 두 아이는 익숙해진 몸짓으로 가벼이 학교로 향하고, 나는 5~6시간의 ‘자유’라는 속이 텅텅 빈 상자를 선물로 받는다. 무엇을 넣던 그건 나의 자유!
제법 긴 이 자유에 나는 ‘게으름’과 ‘나태함’을 갈아 넣고 있다. 평소 아이들에게 얽매여서 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며 투덜거렸으면서 막상 시간을 주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고대하던 순간들을 채우고 있다. 아이들은 개학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방학을 보내는 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주는 육체적 편안함과 의미도 없이 흘려보낸다는 정신적 압박감이 공존하는 가운데 서 있다.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인간이다. 일상이 주는 익숙함이 엄마 뱃속처럼 편안한 사람이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내 세포 안에서 10%도 채 차지하지 못할 만큼 미비한 존재이다. 이런 내가 마흔이라는 숫자 앞에서 용기를 내어 일상에 변화를 꾀했던 지난 6개월은 기적이 눈앞에 나타난 시간이었다.
나를 돌보는 시간과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영어낭독 프로젝트 참여, 몇 백 명이 듣는 공간에서 나의 목소리 내기 등 이전의 나는 하지 않았을 것들에 푹 빠져서 나는 달리고 달렸다. 마치 처음 세상 밖에 나온 아기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익숙함이라는 이름이 한 번 덧칠되면서 모든 것이 다시 평범한 일상이 되어 내 곁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신세계의 환상이 이렇게 또 끝나나 보다.
마치 단물을 다 빨아 먹은 풍선껌을 씹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걸 질겅질겅 계속 씹으면서 나의 턱 운동을 주기적으로 시켜줄 것인가?
아니면 이미 단물은 빠진 지 오래이니 그냥 미련 없이 뱉어버릴 것인가?
새로운 맛의 껌을 하나 더 입에 넣어서 단맛을 추가하고 풍선껌의 크기를 키울 것인가?
내 머릿속은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분주하기만 한데,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이들의 개학 첫 날, 글자 한 자 읽지 않고 나의 점심의 흔적도 치우지 않은 채 소파와 한 몸으로 뒹굴거리며 하교한 아이들을 맞이한 순간, 그 기분은 진짜 길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질펀한 똥을 밟은 기분이었다. 몸만 폭신한 곳에 안착시켰을 뿐, 마음과 생각은 한심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후회 속에, 그 똥 밟은 찝찝한 기분으로 며칠을 더 보내면서 이렇게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공기 속에서 흩어져 버릴 시간일지라도 이것 역시 나를 위한 시간임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라는 것을!!
아이들 방학 동안 영어낭독인증 4개와 삼시 세끼 잘 챙겨서 먹인 식사들, 함께 놀기, 두 아이 사이에서 재판관 역할, 전과목 선생님 역할까지 매일의 시간은 초등 둘의 시간표로 돌아갈 만큼 나는 분주하게 개학을 맞은 격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값진 ‘게으름’과 ‘나태함’인가?!
이 둘로 채워진 현재의 이 쉼은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있고, 여기서 무너지게 하더라도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느끼는 감정이다.
이틀 전, 정말 오랜만에 나의 단잠을 깨우던 새벽 알람 소리도 없이, 원하던 시간에 눈 번쩍 떴던 아침은 기분 좋은 기상이었다. 비록 나의 새벽 시간은 공중 분해되어 사라졌지만 나는 숙면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 시간도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나니 괴롭지 않은 기분으로 나의 느슨함을 바라본다. 씹다 만 풍선껌을 잠시 입천장에 붙여놓는다고 해서 큰 일이 생기지 않듯이 고요함 속의 편안함으로 내 곁에 머물게 허락한 것이다.
지금까지 항상 무너짐의 원인을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이라 탓했음을 진심으로 사과하고자 한다. 이로써 난 이제 비밀처럼 곱게 접어놓았다 펼쳐볼 순간을 하나 더 간직하게 된 셈이다. 앞으로 살아갈 나에게 선물다운 선물을 전한다.
안녕! 나를 찾아온 게으름과 나태함아!
그동안 너희의 존재를 하찮고 가치 없다고 여겨서 미안하구나!
너희 둘로 채워졌던 나의 상자 속 자유들이 있었기에 나는 여유로움을 만났어!
그리고 다시 새로운 것을 마주할 힘을 가질 수 있었단 것을 알게 되었어. 고맙구나!
하지만 너무 자주, 오래 머물다 가지는 말아줘!
잊을 만하고 사무치게 그리울 때, 찾아와 준다면 더없이 감사할 것 같구나!
며칠 나의 곁에서 함께 하느라 힘들었을텐데, 이제 편안히 휴식을 취하렴!
(역시 늘 동행할 자신은 없구나! 곁을 내어줌에 의의를 두자!)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