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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가정원 Sep 16. 2022

요즘 잘 지내세요?

마음을 다한 좋아요!

불혹!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는 이 단어는 올해 나의 인생에 들어왔다. 이제는 세상 속 풍파에 나를 맡기기보다는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혜안이 생기는 시기라고 생각하니 그 무게가 꽤나 컸었고 마음은 비장했었다. 비단, 나이 마흔이 주는 부담은 나뿐만 아니라 이 시기를 지난 사람이나 다가올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음은 확실하다. 



나의 찬란했던 30대는 나의 계획과 의지대로 육아(育兒)와 전업주부의 삶이 다였다.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 시절 그 시간은 태어나 가장 행복했고 의미 있었으며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숨 자체였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숱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11년을 한결같이 엄마인 채로 살다 보니, 어느새 두 아이는 일거수 일투족, 엄마 손길이 닿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고, 이 시기가 내 나이 마흔과 딱 맞아 떨어진 것은 기막힌 우연일까? 



나는 진심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육아(育我)를 하며 불혹다운 40대를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새벽 기상과 모닝 글쓰기로 진짜 나를 만났고 더불어 이 행위를 SNS에 인증하면서 많은 낯선 이들과 소통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지극히 적은 사람들과 깊이 있는 관계 맺음을 해오던 나에게 SNS 세상에서의 사람들과의 소통은 신세계 그 자체였고, 그저 시답지 않은, 평범함의 끝판인 나의 일상에 좋은 말을 남겨주는 그들의 관심과 칭찬에 처음 받아보는 주목이라 낯설고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타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의 기분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느껴 보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한껏 고취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내가 어느 순간 사라져도 이들은 나를 찾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살짝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나는 늘 먼저 다가서고 연락을 취해야만 타인과의 인연이 이어지는 편이라 내가 손을 놓으면 나와 좋은 감정으로 교류하던 이들은 저만치 멀어지고, 대부분 추억 속의 누군가로 나는 기억된다.

그들에게서 나는 있음 좋고 없어도 크게 살아가는데 허전함과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무게가 있던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달으면서 나는 그들에게 전하는 나의 마음을 서서히 볼륨을 낮추듯 한 칸 한 칸 줄여나갔다.



매일 뒷간 들리듯 들락날락하던 인스타도 영어인증 정도만 올리고 나의 모습을 내비치는 시간을 줄여나가며 조금씩 나의 옛 모습으로 복귀한 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물이 수증기가 되어 사라지듯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인스타 DM으로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혜주님 요즘 잘 지내세요?:)



이 열 개의 글씨 나열에 나는 울음이 터졌다. 코끝이 찡해지는 것이 아닌 펑펑 쏟아지는 눈물에 나조차 당황하며 그렇게 울었다. (다시 떠올리는 지금도 눈물로 화면이 흐릿하다!) 하지만 괜찮지 않음을 드러내기가 싫고, 나의 안위를 묻는 이에게 새빨간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국 이렇게 답을 보냈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일상루틴 다 깨트리면서요^^;



실제 나의 생활은 달라진 것이 없고, 몇 달을 지속해오던 새벽 기상과 모닝 글쓰기만 제대로 안하고 있던 터라 거짓말은 아니였기에 짧은 시간 생각해낸 문장이었다.



잘 지내면 됐어요. 요즘 뭔가 다르게 느껴져서요♥



나와 한 집에 살며 매일 밥을 먹고 함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신랑조차도 전혀 모르고 있던 내 마음 속 동요를 알아보고 조용히 묻는 이 사람의 진심과 관심에 나는 끝내 더 크게 소리 내어 마음이 추스러질 때까지 울었다. 이렇게 소리 내어 운 적이 언제였던가? 우는 내 모습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나를 마주했던 순간이었다. 



“그래! 울어도 돼! 지금 아무도 없어. 쪽팔릴 일도 아니야! 실컷 울어!”



터진 울음에 당황하는 나를 향해 내가 소리쳤다. 그리고 울음이 잦아들었고, 진심을 전한 그녀가 제안한 가벼운 산책을 하기 위해 바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나의 분신과 같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동네 수변공원을 한참을 걷고 걸었던 날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의 진한 소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오로지 인스타라는 세상을 통해서만 서로를 알아가던 우리였지만, 각자에게 전하던 그 많은 댓글은 ‘그저 좋아요’ 가 아닌 ‘마음을 다한 좋아요’ 였던 것이다. 나도, 그녀도!



나는 그동안 나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내가 약자이고, 을의 입장이고 상처받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40년을 살면서 몇 되지 않는 나의 경험이 마치 진실이고 검증된 사실인 것 마냥 다른 이의 진심을 묻어버린 채, 오만방자하게 굴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진실은 결국 통한다’ 이 진부한 멘트가 결국은 진리였음을 깨달으며, 지금부터 겸손한 마음으로 나의 소통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요즘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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